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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 Jazz

김영갑을 기리며 ... 권혁재 기자의 글

내 속엔 꽃 피어 있습니다.
그 꽃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사진 뿐입니다.
사진을 통해 보고 느끼며,
사진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진이 그 꽃의 삶이었습니다.
내 안에서 살아 숨쉬던 그 꽃은 '사진바라기꽃' 김영갑 형님입니다.
이제 그 꽃이 스러져버렸습니다.
내 스스로 보낸 것도 아닌 데
홀로 먼 길을 떠나 버렸습니다.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스러졌습니다.

 


 

김영갑 형님은 사실 제 마음의 스승입니다.
호칭은 서로 편하게 형과 아우로 칭하지만,
그는 항상 저의 '사진바라기꽃'으로 존재했습니다.
형님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한없이 작아지는 제 자신을 느끼곤 했습니다.
언젠가한 후배에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사진으로자존심을 상해본 유일한 사람이 바로 김영갑 형님이라고.....'

형님의 사진은 제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같은 사진일지라도 볼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사진 스스로 살아서 이야기를 합니다.
때론 제주의 한과 아픔을살갑게 들려주기도 하고
어떨 땐 그 한마저도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속삭여 줍니다.
어떤 이는 진짜 제주의 속살을 보고싶으면 두모악(김영갑갤러리)에 들러보라고 합니다.
저 또한 이 말에 절대 공감합니다.
진짜 제주의 속살은 김영갑의 사진에 살아 있습니다.

 


 

갤러리 앞 돌무더기 속에 형님을 닮은 감나무가 바람결을 느끼며 서있습니다.
언젠가 벼락맞아 타 죽어가는 감나무를 옮겨 심어 놓았는데,
기적처럼 잎이 돋고 감이 열리더랍니다.
형님은 "이 감나무처럼 언젠가 다시 루게릭이란 병마를 딛고 일어설테니 두고보라"고 하셨습니다.
더군다나 "혁재야 몸 다 나으면 나랑 원없이 사진 찍으러 다니자" 하시며 씩 웃어 보이시던 모습이 아련합니다.

 

 
언젠가 이른 새벽부터 형님을 깨웠습니다.
그렇게도 새벽을 좋아 하시던 분이셨는데,
병마와 싸우게 되면서부터 새벽잠이 많아졌습니다.
"형님 새벽바다 보러가자"며 억지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좋아했던 새벽에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밤 새 죽어있던 근육을 깨우기 위해 안마를 했습니다.
두 손에 느껴지는 것은 뼈마디 뿐입니다.
그나마 조금의 근육이나마 느껴지는 것은 두 다리 뿐입니다.
"형님! 하도 구석구석을 헤메고 다녀서, 그나마 다리 근육은 살아있네"라고 했더니
"나두 그렇게 생각해. 다른 근육은 다 죽어가도 다리만은 살아있으니 그나마도 고마울 따름이다"며 겨우 일어 나셨습니다.
모처럼 표선의 바다로 나갔습니다.
한없이 바다만 응시하는 두눈에순간 눈물이 고입니다.
셧터를 누르는 제 가슴이 아립니다.
분위기를 바꿀 요량으로"우는 모습 신문에 확 실어버린다"며 애써 농담 한마디 건넸습니다.

 
"이놈아 우는 게 아니라 바람이 눈에 들어간겨" 하시며 씩 웃으십니다.
얼굴 근육마저 마비되어 거의 웃음도 못 짓는 양반이 많이 무안했나 봅니다.
이렇게나마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되돌려야 했나 봅니다.
이 사진이 중앙일보 위크앤에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제목으로 게재 되었습니다.
어색한 웃음짓지만 두 눈에 눈물이 어려 있습니다.
이 눈물은 아직도 제 맘에 어려 있습니다.
이번엔 제가 눈물을 흘릴 차례인가 봅니다.

 


 

두모악을 처음 개장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 때만 해도 제가제주에 내려가면 바깥나들이를 하셨습니다.
형님의 발자취를 느끼고 싶은 제 마음을 헤아렸는지,
여기 저기 다니시며 사진 찍은 곳을 일러 주셔셨습니다.
제주의 구석구석 어느 한 곳 형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만,
게중 용눈이 오름을 가장 좋아하셨습니다.

 


 


 

형님의 작품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용눈이 오름일 것입니다.
용눈이 앞까지 저를 인도하셔선 혼자 오르라하십니다.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용눈이를 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하는 형님의 안타까움을
이제야 알 듯 합니다.
아마형님은 그 용눈이를 이제야맘껏 휘돌아 다니실 겁니다.

형님! 갑이 형님 !
형님이 보고프면 어찌해야 합니까?
용눈이에 오르면 계실까요...
아니면 갤러리 앞마당 감나무 밑에 계실건가요?
  


 

이도 저도 아니면 볕 잘드는 갤러리 입구에앉아 지금처럼 웃으며 반겨주실 건가요?
며칠 지나지도 않았지만 그립습니다.
형님의 살가운 목소리가...
형님의 아름다운 마음이...
사진장이는 사진으로 이야기 할 뿐이라던 그 가르침이...


형님은 유언조차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희망만을 말씀하셨습니다.

"혁재야 금년엔 출판사하나 만들어야겠다"

"왜요 뜬금없이 출판사는 만들어서 뭐하게요?"

"금년엔네 책 한권 만들어 줘야 겠다"

아마도 아직 사진집 한 권 만들지 못한 후배가 안타까우셨나 봅니다.

형님 앞에 부끄러워 책 한권 만들지 못하는 못난 아우를 그렇게도 챙기셨습니다.

언젠가는 갤러리에 제 사진을 걸라 하셨습니다.
"형님 앞에 부끄러워 어찌 사진을 걸겠습니까"며 한사코 마다했습니다.

"혁재야 ! 넌 나랑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다"
형님의 이 말씀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단 한번도 형님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그 말씀이 오늘도 제가 사진으로 밥먹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형님은 가셨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갤러리의 운영에 대해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다만 형님의 뜻은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진장이는사진으로 이야기 해야 한다는 형님의 말씀.
사진으로 세상에 하고픈 이야기를 다 풀어 놓으셨기에,
남아있는 우리들이 갤러리를 보존해야 합니다.
형님의 사진이야기를 보고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야 하기에,
이 땅에 남아서 사진장이로 살아갈 저 같은 놈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라도
갤러리는 유지되어야 합니다.
두모악은 영원히 존재해야 합니다.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웃음으로 끝내기위해 하나에 몰입했다.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피우고 열매 맺기를소망했다.
대지의 흙은 아름다운 세상을 더 눈부시게 만드는 생명의 기운이다.
흙으로 돌아갈 줄을 아는 생명은 자기 몫의 삶에 열심이다.
만 가지 생명이 씨줄로 날줄로 어우러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형님의 저서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형님 이제 맘껏 웃으며 가소서!

글, 사진 :중앙일보 권혁재기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입구에 붙어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표지판...

  

  


 

내부를 둘러보면 제주도에서 흔히 볼수 있는 돌들로 꾸며 놨다.
 

 

김영갑 선생님의 작업실.

 


   

제주도 풍경 사진뿐만 아니라 전통 풍습과 관련된 사진도 있다.

  

  

  

사진외에도 예전에 TV 방송국에서 인터뷰했던 것을

다시 볼 수 있는 곳도 준비되어 있어 선생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출처 : badaso.egloos.com

두모악 갤러리 www.dumoak.co.kr

Giovanni Mirabassi - Cantopiano - J'ai Pas Le Temps D'avoir Trente 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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