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X5
X드라이브로 영역 넒힌 도심형 SAV BMW X5 4.4i
도심형 SAV를 표방하며 태어난 BMW X5가 데뷔 4년만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베스트셀러 5시리즈를 베이스로 한 보디라인은 예전 그대로이나 헤드램프와 키드니 그릴은 크게 달라진 모습.더블 바노스 시스템으로 성능을 높인 엔진은 새로 마련한 6단 AT와 어울려 후련한 달리기를 선사한다. X드라이브는 급코너와 오프로드에서의 안정감을 한층 높였다
글 김우성 기자(ws2000@carvision.co.kr)
지난 2000년, SAV(Sports Activity Vehicle)라는 새로운 세그먼트의 탄생을 알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BMW X5가 2002년의 부분변경에 이어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다시 한번 변신했다. 베스트셀러 5시리즈 세단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X5는 풀타임 4WD 구동계를 갖췄음에도 정통 오프로더보다는 스포츠 주행 중심의 도심형 비클을 지향한다. 이는 X5 데뷔 이후 쏟아져 나온 고성능, 고급 SUV들의 핵심 트렌드 중 하나를 형성하는 성격. 최근 등장한 포르쉐 카이엔은 아예 스포츠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베이스 모델이 된 5시리즈 세단에서 짐작할 수 있듯, X5는 스포츠 세단과 오프로더의 결합체다. 세단의 이미지가 다분한 에지 스타일링과 차분한 보디라인, 깔끔한 인테리어는 이 차가 흔히 볼 수 있는 ‘미니밴+오프로더’가 아님을 드러낸다. BMW 로고의 전통 그대로, 최상의 온로드 주행성능을 자랑해온 X5가 이제 x드라이브라는 신무기를 더한 채 우리 앞에 나타났다. 미국 스파르탄버그에서 날아온 바바리안 전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커진 키드니 그릴과 날렵한 헤드램프
차값만 1억 원이 넘는 호사스러움을 지녔음에도, X5는 마치 내 차인 양 친숙하다. 지난해까지 1년 반 동안 본지에 연재했던 여행기 ‘X5 브레이크’를 위해 매달 한번씩 전국 방방곡곡을 함께 누볐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달렸던 도로와 그 여행길에 차곡차곡 쌓았던 기억이 생생한 동지이기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X5를 만나러 가는 마음은 그저 편하기만 했다.
돌덩이처럼 탄탄한 보디라인은 예전 그대로. 반면 얼마 전 데뷔한 X3을 의식해서인지 얼굴만큼은 크게 바꾸었다. 사이즈를 키우고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낸 키드니 그릴은 요즘 BMW 차들의 경향이기도 하다. 크고 둥근 키드니 그릴 덕에 X5의 인상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3시리즈를 닮은 헤드램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변신 포인트. 새 키드니 그릴과 썩 괜찮은 조화를 보인 헤드램프는 트윈 램프를 클리어 커버로 감싼, 특유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멀리서 앞모습만 보고도 한눈에 ‘BMW 차’임을 짐작할 수 있는 요소가 키드니 그릴만은 아닐 터. 헤드램프의 강렬한 브랜드 이미지에서 묘한 고집을 느낄 수 있다.
데뷔 당시 눈길을 끈 보네트 주름은 키드니 그릴과 같은 컬러의 에어 인테이크와 어울려 한층 안정된 느낌을 준다. 범퍼 디자인은 심플해진 반면 흡기구를 좀더 키웠다. 크롬으로 마감한 사이드 스텝은 그저 단정하기만 하던 X5에 처음으로 단 ‘마초적’ 장식품. x드라이브와 더불어, 이 차가 만만찮은 오프로드 달리기 실력까지 갖췄음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아래위로 나눠 열리는 해치 게이트나 무거운 짐을 실을 때 편리한 슬라이딩 타입 짐칸 플로어는 더 이상의 손질이 필요 없을 만큼 높은 완성도와 아이디어를 이미 지니고 있었기에, X5의 뒷모습은 ‘윈드 오브 체인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인테리어의 효율적 배치는 여전
운전자 중심으로 에워싸듯 꾸민 인테리어가 유행을 이루고, 온갖 휘황찬란한 디자인과 놀라운 첨단장비들이 홍수를 이룬들 X5의 인테리어는 여전히 그 모습을 지키고 있다. ‘운전자 쪽으로 전혀 기울어지지 않은’ 센터페시아를 가운데 두고, 좌우 대칭에 가깝게 놓인 대시보드는 좋게 말하면 깔끔하고 그 반대로 표현하자면 유행 지난 차로 여겨질 만큼 무덤덤하기까지 하다.
바로 이 평범함 속에 X5 인테리어의 진가가 숨어 있다. 표면을 거칠게 다듬은 가죽 질감은 도무지 질리지 않을 듯하고 꼭 필요한 계기만을 골라 필요한 자리에 놓아둔 배치 역시 빼어나다. 눈에 띄는 변화라 해봤자 AV 모니터의 글자체와 정보가 조금 달라진 정도. 편하면서도 기능성 좋은 시트도 그대로다. 기세 등등한 라이벌들을 생각하자면 센터페시아 디자인을 좀더 세련되게 다듬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다. ‘변신 강박증’을 앓고 있는 여느 메이커들과 달리 BMW는 X5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으면서 꼭 필요한 부분에만 조금씩 손을 대는 인내력을 보여주었다. 운전석 헤드레스트는 이같은 작은 변화의 한 예다.
국내에 선보인 X5는 직렬 6기통 3.0L 225마력 유닛을 얹은 3.0i와 V8 4.4L 320마력 유닛을 쓰는 4.4i 등 두 가지. 디젤 모델인 3.0d는 여전히 유럽 및 북미 시장에서 팔리지만, 같은 시장에 선보여온 4.6iS는 이번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시승차인 4.4i의 배기량은 예전 그대로이나 더블 바노스 시스템 덕분에 최고출력이 34마력 올라가는 등 성능은 크게 나아졌다. 새로 마련한 6단 AT 스텝트로닉과 조화를 이룬 이 엔진의 최고출력 320마력은 6천100rpm에서, 44.9kg·m에 이르는 최대토크는 3천700rpm에서 나온다. 엔진 포지션은 비교적 낮은 편. 무게중심을 낮춘 데서 이 차의 도회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후련한 추진력과 정확한 핸들링이 매력
아이들링에 이어지는 엔진음은 놀랍도록 부드럽고 조용하다. 2천rpm 안팎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데, 이 속도와 엔진 회전수를 유지하면 고급 세단을 운전하듯 매끈하게 달린다. 저회전 영역에서의 넉넉한 토크와 부드러운 힘이 꽤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새 엔진과 결합한 6단 AT는 수동 모드로 옮겨 앞으로 밀면 시프트 다운되고 뒤로 잡아당기면 시프트 업되는, BMW 고유의 방식에 따라 작동한다.
액셀 페달을 끝까지 밟아 풀드로틀 하면 시속 40km를 넘어서면서 6천500rpm에서 꺾이며 2단으로 변속되고 85km에서 3단, 140km에서 4단으로 넘어간다. 레드존은 6천~6천500rpm. 시속 200km에 이르러서야 5단으로 넘어간다. 제원표상의 최고시속이 210km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6단 기어의 도움 없이도 가속은 풍성하게 이뤄지고, 시속 140~150km를 넘어선 뒤에도 고개가 젖혀질 만큼 꿈틀대는 엔진 파워가 생생하게 전해온다. 6단 레인지를 마련하면서 촘촘하게 이어진 기어비는 말끔한 변속감과 자연스러운 가속력을 이끌어낸다.
X5는 애초부터 기어비를 조절해 토크를 보완하거나 스트로크 긴 오프로드용 서스펜션으로 모자란 2%를 채우는 차가 아니었다. 예전에 구형 X5를 몰고 강가의 고운 모래밭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타이어의 3분의 1쯤이 분말처럼 고운 모래에 박혀 있는 상황에서도 기어를 저속으로 내리고 액셀 페달을 서서히 밟자 무게 2톤의 거구가 마치 땅 위로 치솟듯 모래를 박차고 올라섰던 기억이 있다. X5의 주행감각은 원래 엔진 파워로 밀고 나가는 타입이다.
박진감 넘치는 고속주행 맛볼 수 있어
저회전 영역에서의 부드러움과 달리 고속으로 접어들면 초봄의 졸림이 확 달아날 정도로 파워풀한 성능을 드러낸다. 올라가는 rpm과 더불어 귓전을 울리는 배기음에는 박력이 넘치고, 4개의 타이어는 그 사운드 이상으로 후련하게 회전한다. 엔진은 숏 스트로크 구성으로 회전수를 높일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X5가 고속 코너를 빠져나올 때 마치 탱크가 지축을 울리며 달려드는 것 같았다는 사진기자의 말은 괜히 해본 소리가 아니었다.
서스펜션은 예상보다 부드러우나 버티는 힘과 접지력은 기대를 충족시켜줄 정도. 정확한 핸들링은 일정 부분 x드라이브에 힘입은 바 크다. 지금껏 포르쉐와 폭스바겐만 써온 이 전자제어 구동력 배분 시스템은 평소 구동력의 62%를 뒷바퀴에 집중시키다 코너에서 언더스티어가 일어나려는 순간 구동력 배분을 바꿔 뉴트럴에 가까운 균형감각을 유지해준다. 코너 공략뿐 아니라 오프로드를 달릴 때도 이 시스템의 적절한 구동력 배분은 주행안정성에 큰 도움을 준다. 떠밀 듯 우직하게 산길을 치고 올라가다 급하게 스티어링 휠을 꺾을 때 바깥쪽으로 쏠리는가 싶다가도 금세 제자리를 잡아나가는 움직임은 분명 x-드라이브 덕분. 마치 위쪽은 흔들릴지언정 접시에 들러붙은 아래쪽은 미동도 않는 푸딩 같다고 할까. 다만 급코너에서의 약한 언더스티어는 집중력을 갖고 컨트롤해야 할 부분. 급경사를 내려올 때 기어를 1~2단에 맞추고 HDC(Hill Descent Control) 버튼을 누르면 어떤 상황에서도 엔진회전수는 500rpm 선에서 제어된다.
5시리즈라는 든든한 뿌리에 더블 바노스 시스템과 6단 AT의 힘을 더하고 x드라이브로 오프로드 적응력까지 키운 점은 분명 인상적인 포인트. 도심형 SAV를 지향하며 태어난 X5의 성격은 4년의 세월이 흘러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격 : 1억2천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