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넘 ‘ 한국을 찍는다 ’
국내에서 매그넘 전시회는 이미 몇차례 열렸지만 이번처럼 많은 작가가 다양한 주제로 참여하는 전시는 처음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겨레〉 창간 20돌을 의미하는 20가지 주제를 한국 쪽과 함께 상의해 정한다는 점이다. 1년이 넘는 준비기간과 비용을 투입해 세계적 사진 거장들이 한국을 대표할 이미지를 찍는 이번 프로젝트는 국내 사진사에서 유례가 없는 초유의 대형 기획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비무장지대등 20가지 주제
사진작가 20명 1년간 찍어
우선 20가지 주제는 물·자연경관·농경·서울·길·여성·얼굴·전통·종교·축제·시장·토요일·밤·색·사랑·노동·아이러니 등으로 정해졌다. ‘하늘에서 본 한국’도 이색적이다. 또한 한국만의 분단 현실인 비무장지대(DMZ)가 포함된 것도 눈길을 끈다.
참여 작가는 전문 분야와 출신 지역을 고려해 선정중인데, 거의 윤곽이 정해졌다. 매그넘 회장인 스튜어트 프랭클린(영국)을 비롯해 아바스(이란), 브뤼노 바르베(프랑스), 엘리엇 어윗(미국), 마틴 파(영국), 스티브 매커리(미국) 그리고 1988년 〈한겨레〉 창간 직후 ‘북녘의 산하’를 소개한 일본의 사진가 구보타 히로지도 한 주제를 맡는다.
참여작가들은 내년 8월까지 1년 동안 각각 2주씩 한국을 방문해 계절별로 전국 지역을 나눠 찍는다. 이후 한국과 매그넘의 에디터가 함께 사진을 골라 편집한 뒤 한국어와 영어 등 여러 언어로 인쇄한다.
사진집은 특별판과 대중판으로 나눠 2008년 3월 출간되는데, 대중판은 여러 나라에서 나올 예정이다. 사진전은 〈한겨레〉 창간 20돌인 2008년 5월15일을 전후해 서울에서 시작해 하노버, 베이징, 런던, 뉴욕, 베를린 등을 순회할 계획이다.
매그넘의 국가별 사진집은 지금까지 영국·일본·아일랜드·포르투갈·그리스 등이 나왔다. 이들 기존 사진집은 매그넘의 이름으로 출간됐어도 특정 작가 개인의 작품집 성격이 강했고 또 이미 촬영한 사진들을 모은 것들이었다. 한 나라를 정하고 회원 작가를 투입하는 전작 성격의 기획은 그리스에 이어 한국이 두번째인데, 규모면에서는 그리스 사진집에 견줘 훨씬 크다.
매그넘은 1947년 로버트 카파(헝가리),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프랑스) 등 당대의 사진가들이 모여 사진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작품의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 설립한 사진가 그룹이자 회원들이 찍은 사진을 언론에 공급하는 일종의 사진 통신사다.
특정 분야에서 한 집단이 차지하는 위상이 매그넘처럼 대단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이란 장르에서 매그넘이 차지하는 위상과 상징성은 다른 분야의 주요 단체들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강하다. 이는 비교적 짧은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족적을 남긴 작가들이 바로 매그넘을 만든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창립을 주도한 로버트 카파는 종군기자의 대명사로, 보도사진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힌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란 사진철학으로 20세기 사진사 전반에 걸쳐 가장 유명하고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런 초창기 회원들의 명성 이상으로 매그넘은 이후 보도 및 다큐멘터리 사진 분야에서 항상 그 시대 가장 극적인 역사적 순간을 기록해오면서 이름값을 높였고 20세기 사진사에서 포토 저널리즘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래서 보도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예술사진 분야에서도 주요한 작가들이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보도 분야 못잖은 성과를 냈다.
매그넘은 까다로운 회원 가입 기준으로도 유명한데, 아시아권에서는 일본과 대만, 이란이 회원을 배출했다. 아직 한국인 회원은 없어서 국내 사진계로부터 한국 사진이 세계 수준에 오른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문턱이 높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구본준 기자
출처: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