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met Gowin
에메트 고윈은 1941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1964년에 리치몬드 프로패셔널 인스티튜를 졸업하고, 로스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펜실베니아주에 거주하며 프린스턴 대학에서 객원강사를 하고 있다. 라이트 겔러리에서의 개인전 이후 1971년에 뉴욕 현대미술관 에서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와 2인 전을 열었다.
미국은 향의 시대와 내향의 시대를 반복 한다고 한다. 50년대부터 60년대 까지가 급진적인 외향의 시대였다면 70년대는 확실히 내향의 시대였다. 물론 사진표현도 역시 사회구조의 산물로 현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예외는 아니다.
50, 60년대의 사진은 도시를 주제로 한 급진적인 방향으로 비약하였지만, 70년대에 들어선 시대를 반영하고 자신들의 마을인 지방에 눈을 돌리는 유턴(U-TURN)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 전형적인 예가 EMMET GOWIN의 사진집 사진(PHOTOGRAPHS, 1978)이다.
나의 사진은 매일 매일 생활의 일부로써 제작된 것이다. 어떤 계획이나 할당된 임무로써 찍은 것은 아니다.
그 자신이 이렇게 언급하고 있듯이 사회를 고발하거나 새로운 사진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진집 67점의 작품은 고윈 자신의 생활의 일부로써 찍은 이른바 가족사진이다,
버지니아 던빌 지방에 사는 가족의 모습을 일상적으로 추구하면서 그 이미지는 상징적이고 메타포에 충만해 있다. 더욱이 그의 처 에디드(EDITH)는 그 메타포어의 상징적인 기호가 되고 있으며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가족이라는 것의 제도적인 구조와의 연결에 그자신 숙명적인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그의 처 에디드와 결혼하기 1년 전인 63년부터 시작되고 있지만 본격적인 가족 사진으로 찍기 시작한 것은 66년 부터이다. 에디드와 그리고 그녀와 닮은 용모를 중심으로 친척, 이웃들이 잇달아 등장하다. 그 중에서도 80세가 넘어 보이는 조모 레니는 에디드가 찍혀져 있는 작품 속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고윈의 사진에서 늙은 조모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녀는 가족제도와 죽음을 향해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상징이다. 즉 일상 속에서 생의 빛남을 에디드라고 하면 레니는 죽음의 무거움이다. 양쪽 모두 장엄한 현실이다. 이 늙은 조모는 72년에 사망했다. 주름 장식이 달린 하얀 천에 쌓여져 관에 넣어진 레니의 사진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페이지부터는 고윈 일가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 던빌(DANVILLE)의 사계절 사진이 10페이지 정도 이어진다.
남부 던빌은 가족과 함께 고윈 에게는 사진의 중요한 요소이다. 풍경은 물론 가족의 포프레이트를 배경으로 놓여져 있는 주택, 침대, 의자, 문 등의 가구가 남부생활의 정취를 농후하게 띠고 있다. 그는 말한다.
수면에서의 태양의 반사, 베란다 철망문의 흔들거림, 문의 여닫이 등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성장하였지만 나는 그러한 즐거움으로부터 졸업하고 싶지 않다.
고윈과 그의 처 에디드(EDITH MORRIS)는 남부의 던빌 출신이며, 이러한 일상성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일상이 어느 때는 눈부시게 빛나는 일이 있다. 이 사진집은 마지막에 에디드가 해산에 가까운 무거운 몸으로 딸 엘리야(ELIJAH)와 함께 나체로 대지에 드러누운 장면과 방금 태어난 아이를 에디드가 안아올리고 있는 작품으로 끝나고 있다.
현대사진의 하나의 방향으로써 투명도가 강한 사진이 있다.
개성의 표현보다도 사진가는 투명한 자세로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주장하는 방향이다. 즉 감상적 태도를 거절하며 냉정하고 학구적이며 기록적 정신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고윈의 사진은 이 투명함을 아름답게 결정화 시키고 있다. 즉 일상을 투명하게 사진집으로 우리들 앞에 제출할 때, 우리들은 이 총체를 인간생활의 무게로써 묵직하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안셀 아담스의 현장의 풍경사진에서 계발 되었다고 말하고 있듯이, 이 투명도는 아담스로부터 배운 것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담스의 투명함은 우주적 신비감을 감돌게 하고 있는 것에 비해 고윈의 그것은 일상세계로 하강하기 위한 것으로 완전히 질을 달리 하고 있다.
60년대 컨템퍼러리 사진가(CONTEMPORARY PHOTOGRAPHERS)의 사진은 전성기를 지났다고는 하나 아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강인한 사상의 뒷바침이 있었다.
그래서 실로 70년대 사진의 등장이 눈앞에 이르렀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얼핏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지고 있으며 다양한 생의 디테일을 감축 있다.
격동의 60년대부터 70년대의 환멸과 회고의 시대를 맞이했을 때, 아직은 시기상조이지만 고윈의 작품이 출현했다.
대부분의 사진은 삼각대를 세우고 대형카메라로 찍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서로 마주 보게끔 되고 서로 느낀 것이 사진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진의 발명 당시의 원점으로 되돌아 감으로써 새롭지도 아름답지도 못하지만 확고한 현실을 포착해서 보여주고 있다.
글 :홍순태
출처 : 사진예술
Masters Of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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