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ca (라이카)
Leica (라이카)
나는 그 사진기를 발견한 이후 로 그것과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긴장감으로 거리를 쏘다니며
무엇보다도 나의 목전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의 모든 본질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포착하기를 바랬다.
또한 나는 여행하는 법을 잘 모르면서도 상당히
많은 여행을 다녔다.여행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자
하였으며, 한 나라에서 다음 나라까지 가는 사이의 시간은
내가 보고 느낀 것을 소화하는데 할애 했다.
일단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면 그 나라의 관습을 익혀 정착하고 싶기도 한다.
결코 세계를 관광만 하는 그런 여행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쏭 - <결정적 순간> 서문
얼마전 세상을 떠난 위대한 사진작가가 자신의 제2의 눈이라고 말했던 카메라인 라이카.
그는 평생 라이카 하나로만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일년만 지나도 가격이 절반 정도는 떨어져 버리는 dslr카메라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에도
수십년 지난 구닥다리가 일반인들은 감히 구입의 엄두를 못낼 가격에 마음에만 담아두고
있다는 꿈의 카메라 라이카에 대해알아보자.
출처 : 사진예술 http://photoart.co.kr
라이카의 역사 1 |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라이카 50주년 당시 라이카가 기로에 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맹렬한 일본과의 경쟁과 높은 생산원가, 자본의 열세 등에 대응하기 위한 반사식 카메라의 급속한 개발요구와 레인지 파인더 타입 카메라의 불확실한 시장성은 극렬한 변화나 아니면 라이쯔에 의한 카메라 생산 중지 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짜이스(Zeiss)는 이미 91년에 카메라 생산을 중단한 상태였다. 라이카 M5는 렌즈를 통한 노출측정에 있어 세계 최초의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로서 편리성에서 최고도의 완벽성을 갖고 있었으며 상당히 인상된 가격인데도 대량으로 팔렸다. 흥미있는 신기종은 콤팩트카메라인 라이카 CL인데 그 작은 크기에 M5와 같은 렌즈를 통한 노출측정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즉 카메라 내부에 달린 수광부가 노출 측정시 렌즈 뒤 중앙부위에 위치하고 셔터를 작동시키면 기계내부로 삽입되는 방식이다. 이 CL카메라는 미놀타와의 합작에 의한 첫 결실의 하나로 독일에서 제작된 렌즈로서 라이쯔 명세에 들어가 있다.
또 무엇보다 그 변함없는 크기에 렌즈를 통한 노출측정 기능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반사식 카메라에 있어 전자가 메커니즘의 제어기능을 떠맡게 되었는데 첫 번째로 1976년 발매된 라이카 R3는 전자식 코달셔터와 중점측광 평균측광 기능을 가졌고 이어 1980년에 발매된 완벽한 전자식인 R4는 중점 또는 평균측광용 조리개 우선식, 셔터우선식, 자동 또는 수동의 5가지 프로그램의 선택과 포커싱 스크린의 교환기능을 가졌고 후기에 발매된 R4-S는 이와 비슷하기는 하나 3가지 프로그램으로 그 기능을 제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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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의 역사 2 |
초의 라이카맨 오스카 바르낙
카메라 생산을 반대하는 측의 의견은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기 위하여 사진유리건판을 대량 비축해 두었던 당시 사진기자재 판매상들의 이해를 반영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그 당시에 독일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맞고 있었다. 값싼 35mm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는 35mm필름의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해 낸 반면 전통적인 기자재 생산이익을 감소시켰다. 과거 라이쯔 공장건물의 벽에는 1924년 바르낙의 라이카 생산 결정이 이곳에 이루어졌음을 시사하는 현판이 걸려있다.
번호는 내부 부속품에도 부분적으로 표시되었는데 이로써 훗날 어떤 주요부분이 개량되었는지 점검하기가 용이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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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의 역사 3 |
필름의 발전에 기여한 카메라 그 당시 필름은 코닥크롬 롤 필름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독일로 가져왔고 현상하기 위해 미국으로 다시 돌려보냈으며 현상 후 항공화물을 통해 다시 받았다. 제페린 비행선이 여기에 한 몫을 했다. 좋은 타입의 흑백필름의 모색은 이상한 발견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면 청년지배인 라이쯔가 이집트에 갔을 때 열대용 포장 속에 싸여진 특별한 유형의 아그파 필름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당시 어떤 이는 항공사진을 위해 페루쯔(Perutz)가 만든 감광유제가 라이카용 필름으로 우수한 것을 발견했다.
1940년에는 발매 중지된 Ⅲc에서도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 이전의 모델과 비슷한 형태의 그 기종은 주물로 몸체를 만드는 다이캐스팅 방식으로 제작되어 내구성이 크게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다소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그 외형이 약간 길어졌는데 여기에 셀프타이머(delayed action Timer)도 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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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의 역사 4 |
독일어 발음상 ‘Ⅲe’라는 기종 이름을 채택치 않아 1950년도에는 중요한 기능을 갖춘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플래시 동조 기능이 내장된 Ⅲf였다. Ⅲf이전에는 플래시가 스피드 다이얼 위나 특수한 바닥판에서 외부로 연결되어 작동되었다. Ⅲd(이는 실제로 Ⅲc에 셀프타이머가 부착된 형태임)와 Ⅲf사이에 Ⅲe가 빠져있는데 이는 ‘Ⅲ’의 독일발음이 뒤로 오는 ‘e’와 구별이 안되기 때문에 Ⅲe를 기종명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Ⅲg는 스크류마운트를 채택한 라이카의 마지막 기종이다. 그러나 이 기종은 다른 스크류 마운트 카메라와 달리 50mm와 90mm용 플레임이 있는 밝은 선의 파인더를 가지고 있다. 오늘에 와서 Ⅲg는 최후의 스크류마운트 카메라로서 수집가의 호평을 받고 있다. 스크류 마운트 카메라는 1960년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라이카 30년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혁신은 1954년 베일을 벗고 출현한 라이카 M3였다. 이 카메라는 종래의 카메라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종으로 바이오네트 렌즈 마운트에 교환렌즈에 따라 플레임이 변하는 아주 밝은 뷰파인더를 내장하고 있다. 또한 별도로 제작된 노출계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여 반자동기능을 부여하였다. 이 카메라는 프로사진가들과 렌즈교환이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스크류 마운트 방식의 카메라에 염증을 느낀 고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라이카 M3 발매로 또 다른 라이카 30년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역사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1965년 오랜 숙원이었던 SLR카메라 라이카 플렉스가 발매되었다. 예상한 바와 같이 철저하고 충분한 작업을 통해 스탠다드로 평가받는데 무리가 없었다. 이 기종도 라이쯔의 전통에 의해 제작되었고 후속모델로 라이카 플렉스 SLR과 SL2가 생산되었다.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와 반사식 카메라는 모터 드라이브, 정밀한 거리계, 다양한 렌즈군을 망라한 액세서리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게다가 그 두 시스템이 별개의 시스템으로 여전히 양립되고 있고 특히 렌즈들은 다른 기종과 같이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어떤 시스템들도 따라오지 못하는 점이다. M시리즈를 발매하면서 라이쯔는 반사식 포커싱과 프레이밍을 쉽게 하도록, 특히 망원렌즈나 접사를 위한 비조 플렉스 시스템을 충분한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비조 플렉스는 현재 생산 중지된 상태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할 때 그 기구의 최대 단점이 렌즈를 통한 노출방식이 내장된 M6의 출현으로 극복되었다. 반사식 카메라와 뷰 파인더식 카메라 중에서 어떤 기종이 더 좋은 기종인가 하는 오랜 논쟁은 지난 10여 년간 양자가 공히 만족스러운 기종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각 기종은 현대사진에 있어 제각기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라이카 M형은 견고하면서 상당히 가볍고 21mm에서 135mm에 이르는 초점거리를 갖춘 밝은 렌즈로 특히 빛이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속사와 정확한 포커싱이 용이한 기종이다. 보도사진에 있어 그 조용한 셔터소리는 이상적이다. 사용범위가 광범위한 라이카 R형은 아마추어들의 일반사진에서부터 정밀을 요하는 과학 사진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종이다. 반사스크린은 프레이밍을 쉽게하여 별도의 뷰파인더나 접사용 포커싱 기구 사용의 필요성을 배제하고 있다. 사진의 수준을 높여준 라이카 아마추어에서 프로사진가에 이르기까지 라이카 카메라가 사진의 수준을 확연히 높여왔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다. 어떤 다른 카메라와도 그 업적은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의 카메라들은 어떤 기본 틀 위에서 조금씩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라이카는 사진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창조해낸 것이다. 아마추어에게는 예의 그 작은 필름이 감겨있는 한, 자동적인 셔터를 누르는 아주 적은 노력으로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도록 편리함을 제공했고 프로사진가들에게는 라이카의 작은 크기가 주는 엄청난 이점 외에 단 한 롤의 필름으로 많은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촬영의 기동성을 부여했다. 그 작은 크기는 중·대형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밝고 초점거리가 긴 렌즈들의 사용을 가능하게 했다. 라이카나 아니면 1913년에 바르낙이 최초로 프로토타입 카메라에 도입했던 35mm필름을 사용하는 다른 유사한 카메라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보도사진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이카가 35mm필름을 사용한 최초의 스틸카메라라는 사실을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유일 ![]() 수년간에 걸쳐 라이쯔에서 발명되고 생산된 방대한 양의 액세서리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사람들은 단지 목록을 열람함으로써 오늘날 35mm카메라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액세서리들이 라이카를 위하여 라이쯔사에서 제작되고 라이쯔사에 의해 실험단계를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식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가 출현하기 오래 전에 사람들은 라이카의 렌즈를 교환할 수 있었고 카메라 내장 레인지 파인더로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초망원 렌즈로 달을 찍을 수 있었고 투시장비를 사용하여 인체의 내부를 촬영할 수 있었으며 시계 작동장치를 찍고, 연속촬영을 하고, 입체사진을 위한 기구를 부착할 수 있었다. 오늘날 카메라 시장에는 성능이 썩 뛰어나고 용도가 다양한 카메라 기구들이 많이 나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30년 또는 40년 전에 라이카를 통하여 이같은 업적들이 전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라이카는 한 사람의 천재성과 또 한 사람의 지혜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오스카 바르낙은 기계를 완벽하게 만들어 내었고 언스트 라이쯔 2세는 계산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생산하였다. 두 사람 다 라이카 카메라의 성공에 있어 비슷한 무게로 공헌하였다. 지금, 라이카의 3세대에 이르러 언스트 라이쯔 3세는 애석하게도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되었고 데오키젤바하(Theo Kisselbach)의 우정어린 충고 또한 들을 길 없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추억은 오스카 바르낙과 더불어 우리들의 가슴속에 살아있을 것이며 우리가 라이카를 가지고 있는 한 이 위대한 업적을 가져온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게 될 것이다. |
라이카의 탄생
그 이후 개량된 시제품의 종류는 31종에 이르며 프로토타입(proto type) 또는 눌세리(Null serie 또는, Zero series: 모델 0) 등의 명칭으로 분류되고 있는 기종이 이에 속한다. 숱한 시행착오 속에 축적된 이 시기의 다양한 경험은 향후 라이카 성공의 발판이 된다. |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 시대의 개막 1 |
“스물두살이 되던 해인 1931년에 나는 아프리카로 갔다…… 나는 삶을 ‘포착’하겠다고, 즉 살아가는 행위 속에서의 삶을 간직하겠다고 마음을 먹고는 숨막히는 듯한 느낌을 맛보며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는 채비를 갖추고 온종일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어떤 상황의 진수 모두를 단 한 장의 사진 테두리 속에 잡아둘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스크류 마운트 타입으로 렌즈교환이 가능한 최초의 라이카는 1931년에 발매된 라이카 Ⅰ이며 C타입으로 알려져 있다. 보다 개선된 새로운 기종들에 추월당하여 짧은 기간동안 발매된 이 기종은 1mm☓39mm 핏치의 나사로 이루어진 렌즈마운트의 플랜지가 그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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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스크류 마운트 시대의 개막 2 |
라이카 Ⅱ ‘모델D'
이 카메라는 일련번호 101001에서부터 시작하여 1932년 한해만 해도 5천대가 제작된다. 이 카메라의 전형적인 모델인 크롬몸체는 1933년 이후 일련번호 114001부터 제작이 시작되었다.
이 저속셔터 다이얼의 부착으로 라이카 카메라는 명실공히 셔터기능면에서 콤파셔터를 쓰는 카메라를 추월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5배율의 밝은 레인지파인더가 채택되어 장초점렌즈의 포커싱이 훨씬 용이해졌고 시도보정장치가 장착된 접안렌즈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라이카 Ⅲ는 1939년 일련번호 343100을 마지막으로 그 생산이 중지된다. 라이카 250 ‘모델 FF와 GG’
라이카 Ⅲa ‘모델G'
었고 1950년 일련번호 357200으로 그 생산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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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의 전성시대 1 |
을 찍기 위한 하나의 메커니즘이라는 극히 당연한 사실의 범주를 넘어 미신처럼 부풀려온 애호가들의 논리에 적지 않게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유명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은 일평생 라이카만을 애용한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고 있고, 로버트 카파(Robert Capa)가 1935년 이후 라이카를 사용하면서 불행한 전쟁의 모습이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 또한, 라이카카메라와 몇 개의 필름은 에드 반 데어 앨스켄(ED Van Der Elsken)을 ‘나르시즘’ ‘남아프리카에서’ 등의 대작을 낳은 세계적인 인물로 부각시키기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생산설비의 전면적인 교체가 불가피하게 되었지만 월등히 향상된 카메라의 품질과 생산과정의 편리함을 놓고 볼 때 그 투자는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 방식은 향후 새로운 모델의 출현을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셔터 스피드의 배열에 있어 카메라 몸체전면에 부착된 저속셔터에 T셔터, 1/2, 1/4, 1/10, 1/15, 1/20, 1/30초를 설정하였고 1/30초에서 고속셔터로 전환하도록 하여 고속셔터의 효과를 제고하였다. 몸체 윗부분에 설정된 셔터스피드 1/30, 1/40, 1/60, 1/100, 1/200, 1/500, 1/1000과 Z셔터였다. 뷰파인더의 배율은 1/2이었고 그 반면 레인지 파인더는 1.5배로 늘어났다.
크롬도금으로 제작된 이 카메라의 몸체는 전후에 만들어진 Ⅲc와 같은 모양이며 단지 필름되감기 레바 아래 측받이만 그 이전 모델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몸체 전면에 부착된 저속 셔터 다이얼이 사라진 것 외에 Ⅲc와의 또 다른 차이점은 몸체 윗부분의 액세서리 슈에 있는 끼움쇠에 두개의 꽤 큰 나사로 고정된 금속 박편(薄片) 스프링에서 찾아볼수 있다. 또 어떤 기종에는 Ⅲf타입의 플래쉬 연동장치가 부착되기도 했다. 1/30, 1/40, 1/60, 1/100, 1/200, 1/500초와 B셔터가 이 기종의 셔터 스피드로 설정되었고 몸체 윗부분에는 전쟁전에 생산된 카메라에서 쓰인 ‘Le-ica D.R.P' 와 ’Ernst Leitz Wetzlar '가 그대로 음각되었으며 여기에 ‘Germany'가 추가로 음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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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의 전성시대 2 |
라이카Ⅲf 또한 50년대 60년대를 풍미한 우리나라의 존경받는 원로 사진인들이 그들의 추억 속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카메라로 이 Ⅲf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이 기종의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의 전성시대를 구가한 최고의 명기였음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는 것이다.
여기에는 웨츨러의 전형적인 형태로 캐나다에서 제작된 1천대, 즉 일련번호 610000 에서 611000사이의 생산대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블랙 다이얼’ Ⅲf에는 라이카의 전형적인 셔터 스피드가 설정되었다. 즉 저속스피드 다이얼에 의한 T, 1, 1/2, 1/4, 1/10, 1/15, 1/30초, 몸체 윗부분 스피드 다이얼에 의한 1/30, 1/40, 1/60, 1/100, 1/200, 1/500, 1/1000그리고 B셔터이다.
그러나 일련번호 611001부터 615000사이에 제작된 기종에는 1/25, 1/50, 1/75, 1/100, 1/200, 1/500초와 B셔터로 다소간 변경설정 된다. 후기모델에서는 Ⅲf'레드다이얼‘과 마찬가지로 1/1000초의 고속스피드가 채택되었고 1956년까지 총 3만4천대가 제작되었다.
모델이 발매된다. 이 기종은 1957년 까지 생산되었다.
우선 뷰 파인더는 패럴랙스 보정이 되어있고 90mm 렌즈용 프레임이 네 개의 삼각형으로 지시되고 있다. 전면에서 볼 때 보다 커진 뷰파인더 옆에는 작은 창이 있어 프레임을 밝게 하고 있고 레인지파인더의 창은 둥글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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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황금시대의 개막Ⅰ편
라이카 M3의 출현
그러나 여기에서 명기라고 하는 의미는 이기종이 여기에 등장하지 않은 다른 기종에 비해 그 성능이 월등하다는 뜻은 아니며 명기만이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다는 등식은 넌센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필자는 최고의 명기란 사진가 자신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 자기 작품에 적합하다고 확신하는 기종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단지, 필자는 그동안 단편적인 소개와 구전을 통하여 피상적으로 알려져 왔던 명기의 한 종류 라이카의 다양한 기종과 성능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를 통하여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온 독일 장인정신과 이 카메라를 사용했던 위대한 사진가들의 열정을 반추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라이카 M3 너무나 유명한 이 새로운 모델은 1954년에 소개되었다. 일련번호 700000으로 첫 생산에 들어간 이 기종은 1966년 일련번호 1164865로 무려 12년에 걸쳐 제작된다.
물론 90mm나 135mm 렌즈를 장착하면 별도의 해당 프레임이 뷰파인더에 나타나게 되어있다. 이 사진에서는 35mm 스마론 렌즈가 장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렌즈에는 보정대물렌즈(corrᅳecting objectives)가 부착되어있다. 뷰파인더 앞에는 카메라에 내장된 50mm 프레임을 이용하여 35mm 화각을 볼 수 있도록 한 컨버팅 렌즈(converting lens)가 위치하고 레인지파인더 앞에는 보정렌즈(compensating objective)가 위치하고 있다. 아주 중요한 개선이 1958년 이후 이루어지는데 레바를 두 번씩 젖히도록 되어있던 필름장전방식이 한번 젖힘으로 단축된 일이다. 이 방식은 일련번호 915251부터 채택되었다.
초기 침동식 스미크론 f2를 장착한 기종의 코드명은 ISUMO이고 그 이후 침동이 안되는 스미크론 f2를 장착한 기종은 ISOUN, 또한 근거리용 포커싱 장치가 별도로 부착된 스미크론 f2를 장착한 기종은 ISMON이 된다. 스마리트 f1.5렌즈를 장착한 M3는 ISAIO, 스미룩스 f1.4렌즈를 장착한 기종은 IMOOT로 각각 그 코드명이 부여되었다. ![]() 라이카 M3를 특수한 용도에 맞게 변형한 라이카 MP는 1956년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카메라는 실제로 기자들에게 적합하도록 설계되었고 또 그 목적대로 보급되었다. 이 기종은 1956년에 MP-1에서부터 MP-11까지 총 11매가 제작되었다. 라이카 공장의 기록에 의하면 첫 생산이후 MP-12부터 MP-500까지 제작된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 검은색 몸체는 MP-12부터 MP-150까지, 크롬 몸체는 MP-151부터 MP-450까지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이쯔사의 출고원장에는 마지막으로 출고된 기종이 1958년 8월 22일에 출고된 MP-402로 기록되어있다.
이 때문에 이 기종에는 필름스풀(filim take-up spool)을 위한 와인딩 샤프트(winding shaft)가 별도로 내장되어 있는데 이 와인딩 샤프트는 M3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후기의 M2에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M2기종에서도 LEICAVIT를 사용할 수 있다. (LEICAVIT는 M1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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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황금시대의 개막 2편 |
M3의 형제들
작품의 수준과는 별개로 단지, 필자의 어설픈 주제의식과 아마추어리즘을 높이 평가해준 까닭에 분에 넘치는 호사를 하게 된 것이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이제 우리 사진문화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즉 예술사진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 사진인 모두가 본연의 작가정신으로 복귀하여 주제의식으로 무게가 실린 사진을 만들어 내어야 할 것이다.
작품을 완성해 나가면서 나는 카메라의 사이즈가 작품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점을 충격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뷰파인더 시스템은 그 이후에 제작되는 라이카M 기종의 설계에 있어 뷰파인더 설정의 기본이 되었고 , 향후 새롭게 제작되는 모든 기종은 여기에 새로운 화각을 추가하는 형식으로 제작되게 된다. 그러나 35mm용 화각의 설정은 M3에 비해 뷰파인더 상에 나타나는 화상의 상대적 축소를 초래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M2의 생산은 1958년 일련번호 926600으로 시작된다. 생산이 시작 된지 1년 만에 자기 자신을 제 사진의 피사체로 포함시키고 싶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셀프타이머가 재 부착된다. 그리고 첫 생산된 M2기종에서는 필름 되감기 버튼이 M3에서의 레바를 대신하게 된다.
셀프타이머가 부착된 M2는 미국에서 M2-S로 명명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명칭이 카메라에 정식으로 표기되지는 않았다. 라이카 M2의 제작이 1967년까지 계속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이 기종은 꽤 성공한 기종으로 평가될 수 있고 또한 연속촬영을 위해 전기모터를 내장한 최초의 기종이라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모터는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라이쯔사는 라이카 M2의 제작과 더불어 여기에 걸 맞는 특별한 용도를 위한 카메라를 소량 제작된다. 즉 보도사진가들의 속사(速寫)를 위해 라이카비트나 또 새롭게 선보이게 되는 전기모터를 사용하도록 설계된 MP2, 현미경 촬영이나 광각사진 촬영을 위해 제작된 M1, 또는 M1의 뷰파인더를 제거하고 이를 개량하여 현미경에 부착하여 과학적 용도에만 사용하도록 한 MD가 바로 이러한 기종이다.
물론 라이카 MP에서 사용되었던 라이카 비트가 그대로 쓰이기도 했다. 모터 드라이브는 라이쯔사의 자체기술로 제작되기도 했으나 이는 시제품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고 따라서 주로 미국에서 제작된 모터를 사용하였다.
패럴랙스는 보장되어있고 라이카 M3나 M2와 같은 셔터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며 셔터스피드의 전 범위에서 플래시가 동조된다.
즉 사용이 번거로운 구식인 필름되감기 노브의 단점을 몸체 귀퉁이 부분에 경사지게 위치한 크랭크로 극복하고 있고 분리된 스풀(Spool)로 인해 필름 장전시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했던 불편과 시간낭비를 새로운 장전시스템(Quick-Load System)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렇게 기종의 몸체 윗부분에는 ’Leitz Canada'가 음각되어 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조립된 초기 기종의 윗부분에는 ‘Wetzlar'가 음각되어 있기 때문에 기종간에 다소간의 혼란이 야기되기도 한다.
오스카 바르낙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79년에 제작된 그 유명한 금도금 카메라를 제외하면 이 기종은 모두 검은색으로 제작되었다. 이 금장 카메라는 원래 일련번호 1527201부터 1527700까지 5백대가 제작되었는데 라이카 애호가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인해 라이쯔사는 5백대의 추가 생산을 결정하여만 했다. 이렇게 제작된 카메라의 일련번호는 1528151부터 1528650에 이른다. 이 기종의 메커니즘은 셀프타이머가 배제된 점과 전기모터 드라이브를 사용하기 위한 전선과 파워 샤프트(Power Shaft)등 내부 장치를 제외하면 M4와 거의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된 모터 드라이브는 라이카 M2와 M4에서 사용된 미국 제품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나 사실은 라이쯔사에서 재설계 한 것이며 8개의 밧데리가 사용되던 종래의 미국제 모터와는 달리 4개의 밧데리로 작동되었다. 레인지 파인더 뒷면에 있는 벌브와 전자플래시를 접속시키기 위한 코드는 그대로 남겨둔 채 액세서리 클립에는 플래시를 연동시키기 위한 핫슈(Hot-Shoe)가 추가되었다.
라이카 M4에서 M4-2로 일련의 교체과정을 거치는 동안 과학용으로 제작된 라이카 MDa는 새로운 모델인 MD-2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MD-2에는 M4-P와 마찬가지로 액세서리슈(Accessory Shoe)에 핫슈가 장치되고 모터 드라이브를 사용하기 위한 전선과 파워샤프트가 내장되어 있다. 이 기종은 전부 검은색으로 도장되어 있는데 경첩식으로 된 몸체 뒷부분에는 필름의 종류와 감도를 연필로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새로운 스타일의 원반형 필름 리마인더(Reminder) 가 있어 이채롭다. 라이카 M4-P
기존의 라이카 M4-2화각에 추가된 화각은 28mm용과 당시 새롭게 개발된 스미룩스 75mm F1.4용이며 특히 풍경사진에 탁월한 성능을 자랑하는 라이카 28mm용 화각의 등장은 결코 값이 싸지 않은 별도의 뷰파인더를 액세서리슈에 부착시켜야 했던 종래의 불편과 경제적 부담을 완전히 해소시키고 있다.
1913년 미니에이쳐 카메라로 오스카 바르낙이 최초로 시사(試寫)를 했던 날을 기념하여 1983년 크롬도금으로 발매된 2천5백대의 기념 카메라를 제외하면 모든 카메라는 5종의 시리즈로 제작되어 1부터 500까지 고유의 일련번호를 부여받게 되는데 이 기종의 코드번호는 1041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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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의 렌즈 |
몇해 전 우리는 한 비극적인 사건을 통하여 일본인들의 철저한 기록정신의 진면목을 접하게 되었다. 숱한 사상자를 낸 일본 항공기의 추락사고 현장에서 찾아낸 한 평범한 샐러리맨의 메모에는 놀랍게도 그 긴박하고 처절한 순간이 최후까지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 메모의 발견은 정작 피해당사자인 일본인이 아닌, 우리 자신을 포함한 전세계에 큰 충격을 던져 주게 되었다.
그는 사진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자신의 동료 학생들이 사진예술보다는 카메라 기종에 심각하게 몰두하고 있는 현실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학생의 신분에 걸맞지 않는 고급기종과 엄청난 고가의 밝은 렌즈에 대한 선호경향은 그들의 지도교수나 사진을 제대로 하는 선배들의 가르침과는 별도로 일본 잡지 등에서 얻은 정보에 좌우된다고 덧붙인 그 학생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서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막론하고 우리 사진계가 왠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결국 작업성격과 관계없는 그 비싼 가격과 무게, 부피에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 아닌이상 구태여 F값이 밝은 렌즈를 선호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라이쯔사는 이 렌즈에 얽힌 특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렌즈의 명칭을 Ernst Leitz Max Berek 의 첫 자를 연결시켜 엘막스(ELMAX)로 개칭한다, 따라서 라이카1에서 다소 사용되었던 아나스티그마트 명칭은 그 이후 ELMAX로 변경되어 표기된다. 1925년 렌즈의 마지막 부분이 1군 2매로 만들어진 3군 4매의 엘마렌즈가 출현하면서 라이카 렌즈는 그 화려한 명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쯔사의 끊임없는 연구는 1931년에 이르러 막스 베레크 교수의 애견(愛犬 )이름을 따서 명명된 헥토르 렌즈를 발매하게 되고, 이어 1933년 스마르 렌즈, 1936년 제논 렌즈 등 다양한 종류의 우수한 렌즈를 계속해서 생산하게 된다.
스미크론 50mm F2 이 렌즈는 1953년 최초로 발표되었고 지금까지 40년 동안 50mm표준렌즈의 최고봉으로 군림에 온 렌즈이다. 근래에 발간된 라이쯔사의 캐털로그에는 이 렌즈가 최고의 화질을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표준렌즈이면서, 작고 가볍고 간편한 렌즈이면서, 근접촬영에 있어 그 성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 이 렌즈에는 얼마간의 세대가 있고 시대와 더불어 개량되어 왔다. 일본의 한 실험실에서 행해진 실험데이터를 보면 1978년 라이카 M-2에 조합되어 측정된 일련번호 2609859 렌즈는 그 보정형태가 다소 과잉보정의 경향을 띠고 있으나 그 정도는 극히 미미하여 거의 완전보정형으로 볼 수 있고 구면수차의 크기도 0.07 mm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스미크론의 특징은 보통의 F1.4 표준렌즈보다 훨씬 적은 수차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조리개 개방시의 F값을 그에다 설정해둔 것으로 특징 지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면중심의 해상력이 mm 당 180本 이라는 높은 수치에 이르게 되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실험실에 최초의 스미크론이 라이카 M2와 함께 등장한 것은 1959년의 일이었고 그때의 중심해상력은 mm² 당 280本 이라는 경이적인 수치였다. 이 신기록은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
1972년도에 라이카 M5에 부착되어 행해진 실험에 의하면 이 렌즈의 구면 수차보정은 필름면에서 멀리 떨어진 최초의 마이너스 축에서 시작하여 필름면 방향의 플러스축으로 되돌아오는 일반적인 형태를 띠지 않고 최후에 다시 한번 마이너스축으로 되돌아오는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응집된 수차보정은 고차의 수차보정으로 일컬어지는데 다른 F1.4등급의 렌즈에서는 이 방식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방식을 사용할 경우, 과잉정보의 결과로 나타나는 하레이션이나 플레어의 증대를 피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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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의 사치 |
노출계 내장방식의 라이카 불세출의 사진가 안셀 아담스는 생전에 M형 라이카를 즐겨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최대 결점은 뷰 파인더를 통해 볼수 있는 영상이 필름에 맺히는 영상과 갖지 않다는 데 있다, 더구나 화각의 구석 부분까지 면밀히 ‘읽어내는 일’은 매우 힘들다.” 카메라 제작회사의 자신감 넘치는 화려한 상품선전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사진가의 모든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카메라는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진가는 자기 작업 성격상 적합한 특성을 지닌 기종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전제로 기종을 선택한 이상 그 카메라가 마치 자기 신체의 일부로 느껴질 만큼 친숙해지도록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카메라는 작품을 위해 쏟는 사진가의 열정에 의해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명품이란 전가(傳暇 )의 보도(寶刀)일지언정 마법의 엑스칼리버(Exc-alibur)일 수는 없다.
이러한 시점에 품질이 뛰어나고 저렴한 일안리플렉스 카메라의 대량보급은 라이카 카메라의 일대 변신을 불가피 하도록 했다. 결국 라이쯔사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하여 일안리플렉스 카메라인 라이카 플렉스를 개발하게 되고 또 노출계 내장타입의 전혀 새로운 형태의 M형 라이카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출계를 내장시키기 위해 크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던 라이카 M5가 발매된 이후, 기존 M4형의 라이카를 원하는 고객의 강한 요구에 의해 제작된 M4-2, M4-p가 M5의 인기를 능가하고 오랜기간 생산된 점을 미루어 보아 라이카 M5가 그리 성공적인 모델이 되지 못했던 것은 확실하다. 또 편리하고 정밀한 전자식 노출 측정 방식을 채택한 M6를 놓고 보더라도, 이 기종은 내장된 첨단 컴퓨터 방식의 회로가 우천이나 충격에 의한 고장 가능성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이상 내구성에서 라이카의 전통을 잇지 못하는 기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안리플렉스 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렌즈를 통한 노출측정’기능을 갖추고 있지 못한 ‘렌즈를 통한 노출측정’기능을 갖추고 있지 못한 렌지 파인더식 라이카의 치명적인 결점은 라이쯔사의 경영위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우선, 이 카메라는 크고 무거운 기종으로 특징지어진다. 특이하게 모가 난 양모서리 간의 길이는 150mm, 카메라 밑바닥부터 셔터까지의 높이는 87mm, 플렌지를 포함한 카메라의 두께는 35mm 에 달한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상의 변화는 이 기종의 주요특징 중에서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라이카 M5는 CDS 전지로 작동되는 노출측정 시스템을 내장하고 있고 포칼플레인 셔터 앞에 위치한 수광부(Ce-11 arm)에 의해 렌즈를 통해 들어온 노출량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노출 측정시 수광부는 렌즈 뒤 중앙부위에 위치하고 있다가 셔터가 열리기 직전 기계내부에 삽입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35mm 렌즈 화각의 밑부분에 해당하는 뷰 파인더의 밑변을 따라 셔터 스피드의 눈금이 1/2초 부터 1/1000초 까지 배열되어 있는데 여기에 현재 설정되어 있는 셔터 스피드를 나타내는 지침과 노출량에 따라 좌우로 움직이는 지시계가 내장되어 있다. 수직방향으로 위치하는 지침과 사선 방향의 지시계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정확한 노출값이 결정되는 것이다. 초기에 발매된 21mm F4나 F3.4계통의 렌즈를 장착할 때에도 이같은 수정 작업이 별도로 행해지지 않으면 셔터막에 매달린 수광부나 렌즈 뒷부분의 볼록렌즈에 손상을 초래하게 된다. 또 50mm 엘마 렌즈처럼 접혀지는 렌즈, 이른바 침동식 렌즈계에 속하는 50mm 스미크론이나 90mm 엘마를 이 기종에 장착할 경우에 렌즈를 침동시키게 되면 수광부가 파괴된다.
이 같은 설정은 이 기종의 노출측정기능이 30초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이루어졌고 이 초저속셔터의 작동은 B셔터속에서 케이블 릴리즈를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행해지도록 되어있다. 또 이 범위 내에서 셔터 다이얼은 걸림쇠(click)가 없다.
후기에 발매된 라이카 M5의 몸체 왼편에는 또 하나의 고리가 추가로 부착되는데 이는 고객의 편리를 도모하고자 한 라이카의 세심한 배려로 파악된다. ![]() 콤팩트 라이카(Compact Leica)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름지어진 CL 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라이카 CL은 라이카 최초의 콤팩트 카메라로 1973년에 선풍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단지, 라이카 M5와 거의 흡사한 수광부를 가지고 있는 탓으로 침동식 렌즈를 쓸 경우 M5와 마찬가지의 제약을 수반한다, 렌즈들은 밑변의 길이가 단지 31.5mm에 불과한 렌지파인더와 변동되어 그 결과 정확성에서 돋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특성은 이 기종이 M5와 거의 흡사한 ‘렌즈를 통한 노출 측정’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플래시 접검이 있는 핫슈는 몸체 윗부분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 기종에서 전자플래시나 벌브조광을 위한 유일한 장치이다. 셔터스피드는 B셔터를 포함해서 1초, 1/2, 1/4, 1/8, 1/15, 1/30, 1/60, 1/125, 1/250, 1/500, 1/1000초로 설정되어있다. 또 1/30초와 1/60초 사이를 제외한 모든 셔터 스피드 사이에서 중간 스피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뷰 파인더의 윗 부분에는 셔터 스피드 색인이 나열되어 있고 노출지시계는 뷰 파인더의 오른쪽에 나타난다. 이 기종에서 정확한 노출값은 노출지침이 눈금의 중앙에 위치할 때 구해진다. 몸체 밑바닥 중앙에 위치한 고리를 반 바퀴 돌리면 한조로 구성되어 있는 카메라 윗부분과 바닥이 분리되고 이 한가지 동작만으로 필름 장착과 밧데리 교환이 가능해진다. 이같은 방식의 개폐장치 덕분에 경첩식 뒷부분에 있었던 압착판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일련번호는 액세서리슈 위에 음각되어 있는데 이 액세서리슈는 카메라 내부에서 고정되어 있는데 이 액세서리슈는 카메라 내부에서 고정되어 있으므로 제거하기 힘들게 되어있다. 이 편리한 카메라에 셀프타이머는 장착되어 있지 않다. 라이쯔 사에서는 ‘장치할만한 공간이 전혀 없기 때문에 ’란 답변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 기종은 그 유명한 라이카 M4의 몸체에 완전전자식 노출계를 내장한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이전에 생산된 노출계 내장방식의 카메라인 라이카 M5와 라이카CL과는 달리 이 기종에서는 실리콘 광전 변환장치(Photodiode)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 장치는 카메라 몸체 윗부분에 고정되어 화상면의 중앙을 향하고 있다. 두장의 필름막중 전막(前幕)에는 화상면의 13%를 차지하는 지름 12mm의 은색 둥근 점이 있어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수광부로 반사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감광소자(感光素子)와는 별도로 몸체의 앞면에는 밧데리 박스가 위치하고 있고 전자회로로 연결된 모든 부품의 인쇄배선과 필름 감도계가 경첩식 으로 된 몸체 뒷 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컴퓨터에 의해 측정된 노출값은 뷰파인더를 통해 두개의 붉은 삼각형(LED)으로 지시된다. 두개의 붉은 삼각형이 동시에 밝아지면 적정노출 상
이 기종은 TTL 스포트(Spot)측광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뷰파인더에서 어떤 부분이 측광대상이 되는지 미리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라이카 M6에는 M4-p와 같은 뷰파인더가 사용되고 있는 6개의 화각이 프레뷰 레바에 있으며 벨브조광을 위한 점검이 더이상 사용되지 않는 대신 섬광등(Flash Lamp)은 셔터스피드 1/30초 범위 내에서 사용가능하다. 전자 플래시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최고속도는 1/50초이며 이는 스피드 다이얼 위에 화살표시로 새겨져 있다. 이 카메라는 모터 드라이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또 이 기종은 기계식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밧데리가 작동되지 않더라도 노출 측정기능 외의 전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된다. 이러한 까닭에 흔히 ‘전자 노출계와 순수한 기계식 셔터의 이상적인 결합’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 중에는 당시의 무역관행이나 라이쯔사의 시장정책 등의 내용이 간과된채 동종의 렌즈나 몸체를 놓고 벌어지는 본토 제품 우위론 같은 설도 있다, 즉 웨츨러 공장제품이 캐나다 밀라노 공장제품에 비하여 그 품질면에서 월등히 앞서고 있고 두 공장에서 사용되는 원자재에서조차 질적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다, 추측컨대, 이같은 주장은 상대적 가격 비교에 의한 막연한 기대에서 비롯된 오해인 듯 하고 여기에는 물론 카메라상 들의 이해관계도 적지 않게 작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는 사진을 하는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러한 속설들이 단지 호사가들의 입방아쯤으로 치부되어야 하며 사진인 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연재를 마무리 하면서 필자는 ‘라이카의 철학’을 소개하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대신한다, “라이카의 정신은 사진가의 순수한 감정과 표현의지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데 있다, 본질을 향한 집념(Concentration on Essentials). 이것이 라이카의 철학이다. |
특집 - Everything of Lei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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