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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 Buchanan (1972) The Messiah Will Come Again

fleurbleue 2007. 1. 30. 17:34
 
Roy Buchanan / Roy Buchanan (1972)The Messiah
Will Come Again

불행한 죽음으로 인해 유명해지는 매우 불행한 예술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로이 부캐넌이 그 중 한 분이겠지요.
로이 부캐넌을 생각할 때 항상 겹쳐지는 이미지는 성경에 자주 나오는 선지자나 복음전도사(Evangelist)의 모습입니다.
그의 부친이 목사였던 까닭에 독실한 기독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탓일까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그의 사진을 보면 근엄하면서 어딘지 금욕적인 인상을 풍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로이의 모습에서 '성자'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목숨과 바꾸어 재림을 예고한 '메시아'였던, 다름 아닌 '블루스'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입니다.
열 세살 나던 해, 그의 손에 '펜더 텔레케스터'가 쥐어지게 되면서부터 시작해 유치장 독방에서의 너무도 비극적인 순교'를
감행했던 그 여름날까지 그의 일생을 통해 한 번도 식을 줄 몰랐던 블루스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그가 남긴 삶의 자취에 단순한
연주자나 엔터테이너의 경지를 넘어선 숭고함을 부여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에게 있어 '메시아'는 영혼의 울림, '블루스'에 담긴 음악 혼이 아니었을까요?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이는 그가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었다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자료는 부인과의 다툼이 원인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실은, 그를 을씨년스러운 유치장의 독방에서 입고 있던 셔츠로 목을 메게 만든 장본인들은,
다름 아닌 장사 속에 눈먼 거대 음악산업가들과 귓전을 달콤하게 감싸는 가벼운 음악만을 찾고
진지한 음악들은 철저하게 외면했던 80년대의 청중들 모두입니다.
그 시절의 음악계의 분위기는 FM방송용의 3분 짜리 곡들이 다투어 시장을 점령했던 무척 암울했던 시기였습니다.

수 많은 음악성 있는 록 그룹들이 이 시기에 소멸되거나, 유행에 좇아 음악적 방향을 선회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음을 록음악을 깊이 있게 들으신 분들은 분명히 기억할 것입니다.
로이 부캐넌의 자살이라는 개인적 사건은 분명 이렇듯 암울했던 음악사적 한 시대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사건이 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아트록 전문 레이블을 경영하는 성시완 씨가 FM방송을 진행하던 무렵,
그의 유학 시절에 보았던 로이 부캐넌의 공연에 대해 얘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로이는 허름한 3류 클럽에서, 예닐곱의 청중을 앞에 두고 초라한 공연을 펼치고는
앵콜도 없이 조용히 무대를 내려가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생을 마감하기 불과 몇 달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맥주 잔 부딪히는 소리와 술꾼들의 주정이 뒤섞인 객석을 뒤로 한 채, 어두침침한 조명을 받으며 스테이지를 내려서는 쓸쓸한 뒷모습이 음악가들 사이에서 `기타리스트 중의 기타리스트'라 불리우고, 지미 페이지와 제프 백 같은 정상급 연주가들도 존경의 염을 아끼지 않았던 위대한 음악가의 마지막 나날이었습니다.
불운했던 생을 스스로 접었던 마지막 순간, 흐릿해오는 그의 망막을 스친 이승의 풍경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고독한 육신을 가두고 있는 창살 너머 그의 눈길이 가 닿은 곳이 어디인지 알 길이없지만, 아마도 조금씩 사위어가는 의식 속으로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메시아의 재림'을 목도하지는 않았을런지.....



 
Roy Buchanan / Roy Buchanan (1972)

Roy Buchanan / The Messiah Will Come Again



Roy Buchanan/ Filthy Ted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