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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강남 성모 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 옆, 보호자대기실.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동생 옆에서 3 4일간 먹는 것은 물론 앉은 자세로 흐느끼며 눕지도 못하신 채 실어증 환자처럼 한마디 말조차 뱉어내지 못하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10여 년 전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어머니에게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미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스무 살 청년이었던 동생보다 '타인의 고통'을 온몸으로 인내하시는 어머니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보통 타인의 기쁨과 아픔을 공감할 수는 있다고 믿지만 그 말은 진실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내 방식대로 재해석하거나 유추해서 이해할 뿐,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측정하거나 공유할 수는 없다.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고통은 신에 대한 믿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치유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이렇게 타자와 나 사이에 공유할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미국의 탁월한 비판적 지성인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귓가에 울리는 북소리와 같다. 저자는 위의 예처럼 부모 자식간의 안타까운 사랑을 주제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대개의 경우 인간은 사진과 같은 이미지에 의해 표현된 잔혹한 고통을 통해 쾌락을 느낀다. 그 쾌락은 내가 고통 없는 안전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일 수도 있고, 가학적 쾌락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 책은 타인의 고통을 보고 어떤 감각적 반응과 이성적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물론 그러한 육체적 고통은 대개의 경우 전쟁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전쟁 상황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장면들을 사진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느낌은 '타인의 고통에'에 대한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전달 방식이다.

독일의 아우슈비츠는 20세기 광기의 역사를 연 포문이다. 이전의 전쟁은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과학과 이성적 합리주의가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믿는 근대 이후에도 전쟁은 계속되었으며 잔혹한 폭력과 비이성적인 행동은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드러난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가혹 행위와 민간인 오폭에서 적나라하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수잔 손택은 '어느 병사의 죽음(1937)'(스페인 내전 도중 벌어진 실제 상황을 카메라로 포착한 로버트 카파의 사진. 56) '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1905)'(조르쥬 바타이유가 평생 간직하고 꺼내보았다는 사진으로 그의 저서 <에로스의 눈물>에 실려 있음. 148) 등 익숙한 이미지에 대한 은유들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을 전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사진으로 대표되는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이해와 전달 방식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쟁 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현대인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타인의 고통'이다.

왜 나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아픔을 느끼지 못할까?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나를 제외한 타인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이며 그들의 고통을 나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일까? 마음속에 이런 질문들이 한 번이라도 떠오른 사람들이라면 수잔 손택이 전해주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분석에 동참해 보자. 그러고 나면 감수성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저자의 다른 책들은 자연스럽게 찾아 읽게 될 것이다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긍정과 부정적 전망은 사회 문화적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아닌가에 대한 대답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괴로워하지 않는 것을 도덕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기적 가족주의를 넘어 보편적 인류애인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 질문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인식의힘

출처: http://blog.naver.com/cogn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