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의 사진을 보자. 심하게 노출 부족된 상태에서 초점이 흐려진 영상 그리고 한쪽 면만 밝은 극단적 인 컨트라스트, (배경은 거의 암흑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러한 방법은 당시 사진에서 익숙치 않은 방법이고 전형적 초상 시진조명방식과는 대조를 이룬다. 또한 느린 셔터속도에 의한 흔들린 영상, 물론 이것은 카메론 그 자신이 의도적으로 작업한 것은 아니다. 사진을 흐리게 만드는 직접적인 요인 중 하나는 긴 노출시간이다. 장초점 렌즈와 큰 사진원판 카메라 그리고 약한 조명은 결정적으로 카메론의 사진 실행에서 노출을 연장시키는 원인이 된다.
아마도 카메론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조리개 구경을 쓴 것 외에는 별다른 기술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카메론 부인이 자신의 사진에 대한 의도는 기술적 측면이 보장하는 사진적 결과물보다는 대상인 모델을 통해 찍히는 상황을 즐기고 있었을는지 모른다.
그 당시 실내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일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기 때문에 필자는 그렇게 추측하는 것이다. 실제로 인물을 촬영하는 것은 정물이나 풍경과는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촬영당시와는 다른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 속에서 경험했을 것이다. 사진의 무의식적 시각을 말이다. 결론적으로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 부인의 초상사진에서 나타난 흐린 효과는 부인의 순수한 것의도'에 비롯되었을까? 사실은 그것이 의도이든 아니든 그리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카메론의 사진 속에서 일종의 푼쿠튬을 느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초상사진을 실행함에 있어 조명은 사진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칙적으로 모델을 비추는 조명에 대한 특별한 규칙은 없다.
그러나 몇몇 당시의 사진사들이 정해놓은 조명의 규범은 초상 사진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친다.(전통적 방식으로 볼 때 우선 모델의 머리 위에 수직으로 내려 비추면서 윗눈썹 밑으로 서양인의 골격기준) 코밑으로 그리고 얼굴의 튀어나온 부분 밑으로 그림자를 지게 하는 강렬한 빛은 피해야 한다. 반대로 모델의 정면과 양쪽에서 직접 비추는 수평 빛들은 필요하다. 그럴 경우 조명은 효율적인 빛의 효과를 얻기 위해 배경에 위치하는 커텐들을 이용하여 조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인 전체적으로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약하면 흑백사진의 경우 음양을 구별시키는 듯한 반쪽 얼굴이 나오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피해야 한다.
이러한 비정형 적인 조명방식은 렘브란트 식의 '음양효과(Claine-obscure)"방식으로 전통적 그림과 관계하고 있다. 과연 그녀가 회화적 방법을 충분히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전형적인 초상사진의 어법에서 빗겨나 있고, 계획되지 않은 비의도 성이 오히려 대상에 대한 신비감을 자아내며, 기술 결정론적인 엄격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대상과의 접촉을 꾀한다.
그래서 카메론의 사진적 시각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카메라가 만들어낸 무의식적 시각이다. 그야말로 사진이 만들어낸 이 무의식적 시각은 우리가 현실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진이 잘 찍혔다는 말은 무엇인가 초점이 정확하고, 노출은 적정, 아니면 선명한 이미지,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상식 선에서 사실적으로 충실히 기록한 사진을 떠올리는가? 예외적으로, 우리는 사진에서 바라는 이와 같은 생각을 예술사진에는 적용하지 않는 듯 싶다.
예술은 무언가 일상과는 동떨어진 이상향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진의 정확한 묘사능력을 희생해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한다. 거기에는 필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설사 내가 그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우리는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양극단으로 나뉘어져있다. 전자의 경우 사진을 대하는 태도는, 사진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기록하는 매체이므로, 그 고유한 특성을 잘 살려 보겠다는 생각이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카메라가 그렇게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사진을 처음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사진이 잘나올까 하는 두려움이다. 복잡한 기계구조와 알 수 없는 명칭들은 둘째치고 그것을 익혔다 해도 자신의 의도와는 늘 다르게 나온다는 점이다.
우선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사진은 깨끗하고 선명한 이미지인데 이것조차 일정치 않다. 자주 이러한 현상들이 벌어지다 보면 카메라를 탓하고 필름을 탓하고 현상소를 그리고 자신의 실력을 탓하지만 정작 사진 그 자체를 탓하지는 못한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하겠지만, 사진은 늘 우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찍혀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사진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정확히 찍는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믿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사진은 분명히 있었던 사실을 찍는다. 그래서 존재했음에 대한 증거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로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항상 우리가 믿고 있는 사실에 부합되어야만 된다.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초점이 흐리지도, 상상 속의 세계도 아닌 분명히 현실에서 벌어졌던 선명한 세계인 것이다. 그가 눈이 나빠 흐린 영상으로 대상을 본다해도 말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틀림없이 이것들을 왜곡 없이 찍어낸다고 보고 있다. 마치 거울에 반영된 것처럼 말이다.
사진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현실에 대한 불학실성의 알 수 없는 세계를 우리가 알아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세계로 규정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의 구조이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더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진을 통해서 인식된 세계는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재차 확인하고 인정하는 세계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정할 수 없는 세계가 찍혀져 있으면, 그 사진은 잘못 찍은 것이다. 특히 기록보관용 사진이나 보도사진의 경우는 객관성이라는 이름의 잣대로 선택된다. 예술사진의 경우에도 결코 예외는 아닌데, 다만 예술로 인정되는 범주가 비 예술사진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예의 규정을 달리 적용하고 받아들인다. 즉 보이지 않는 암묵적 합의에 의해서 맥락에 따라서 잘 찍은 사진과 못 찍은 사진으로 나뉘는 것이다.
사진에서 우리가 엄격하게 지켜 주려하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재현(묘사의 정확함)은 사실상 조금만 부주의하면 비현실적 영상을 만들어 내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진으로 찍혀진 현실을 무조건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객관적인 사진이야말로 가장 사진적 잘 찍은 사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사진이야말로 가장 비 현실이며 허구적인 세계인 것이다. 이 비현실적 세계에 사진의 독특한 미학적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카메론의 사진은 그녀의 의도된 의미에서 가 아니라 사진영상이 만들어 내는 무의미의 세계로의 진입 그로부터 발생하는 존재론적인 흔적의 아우라를 상상의 유희로 이끈다.
그녀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많이 미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은 오늘날(20세기 후반) 사진사학자들에 의해 예술적 가치가 새롭게 밝혀진 몇몇 탁월한 19세기 사진가들 중 한 작가로 꼽는다.
데이비드힐과 로버트 아담슨의 사진이 20세기 초 발터 벤자민에 의해 발굴되었다면, 카메론 부인의 사진은 19세기말 알프레도 스티글리츠에 의해 널리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카메론 부인의 사진에 대해 진정한 연구는 부인이 죽고 난 후 약 백년 후인 1970년대 헬뮤트 게르샤임(Helmut Gernsheim)과 또 그를 따르는 몇몇 사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물론 이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당시의 시대적인 조류를 따르지 않음으로 해서 인정받지 못했던 카메론의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 인정받게 되는 경우가 말이다.
카메론의 후기사진은 데이비드 힐로부터 사진기술과 기존의 회화적 어법과 초상사진의 전형성을 따르면서 오히려 그 독특한 맛을 일어간다. 이것은 당시 예술사진의 조류 속으로 들어감으로서 사진의 네라티브( 이야기 )를 구성하나 사진의 존재론적인 의미의 생성을 제한하는 꼴이 된다.
사진의 존재론적인 의미의 생성이란 어느 하나의 의미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의미의 끊임없는 생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즐겁게 한다.
글. 이영욱
출처 :
Masters of Photography
Artscenecal
Getty Museum
ZOO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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