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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d Jazz

퓨전음악에 대해..

 

마일즈 데이비스가 이끈 60년대 전까지가 정통재즈의 순수 재즈의 시대였다.하지만 1960년대 이후부터전통적인 재즈에 진력이 나기 시작한 소수의 아티스트들이 재즈의 전통적인 악기구성에 신디사이저등 전자악기를 동원하면서 퓨전재즈는등장했다.


이때까지만해도 재즈와 록은 물과 기름처럼 거의 완벽하게 구분되어져 있었다.

하지만 록이 점차 창조적이고 다양해진 반면, 재즈에서는 뮤지션들이 점차 HardBop은 지겨워하고 Avant-Garde는 연주하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되었고 이러한 현상 이후에 재즈와 록(Rock)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결합되는 현상이 나타 났다.

재즈는 특별히 10년마다 변하는 사정은 아니지만 뮤지션 자신도 연대가 바뀌면 새로운 기분이 되기도 하며 또 새로운 의욕도 생기는 것으로 실제로 그 음악이 바뀌어 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특히 70년대는 격동 격변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장르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재즈의 폭을 넓히고, 어쩌면 재즈의 성격 그자체도 변화하고 있던 시대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재즈의 역사는 발생부터 지금까지 굵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60년대 후반 의 재즈를 고찰하는 것이 70년대 재즈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60년대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사실은 64년에 에릭 돌피 67년에 존 콜트레인 등 두 사람의 위 대한 즉흥 연주가가 갑작스런 죽음으로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즉흥 연주를 추구하 는 모든 것이 중단되어 버렸고 70년대는 개인 연주로부터 종합적이 표현 방식의 연주로 경향 이 바뀌어 버렸다. 또 60년대 중기에 개화되어 난해한 프리 재즈의 융성과 그후의 막다름이 결 국 그 반동으로 70년대의 록과 소울을 도입한 퓨전을 만들어 놓았다.

70년대의 재즈는 전년도 1969년에 레코딩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와 를 필두로 해서 잘 가꾸어진 음악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70년대 재즈는 다양한 면을 대상으로 이미 60년대에 그러한 복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70년대 재즈는 항상 60년대의 반동과 밸런스 운동, 또 다른 예술과의 관련된 부분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60년대 재즈가 개인적인 예술의 시대이자 새로운 이론을 추구한 시기였다고 한다면, 70년대는 대략적으로 집단적인 표현 방식을 추구해 온 시대이며 퓨젼의 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70년대 재즈의 시작을 어디에서 찾을까는 사람에 따라서 다소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69년에 녹음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가 70년대 전야의 명연주라 생각되며 이미 70년대 재즈의 캐릭터를 모조리 대비하고 있던 가장 시사적이며 예언적인 중요한 레코딩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비밥을 시사한 <민턴즈 하우스의 찰리 크리스찬>과 쿨 재즈를 시사한 , 모드 재즈의 탄생인 에 필적할 재즈사에 남긴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60년대 재즈가 개인적인 예술의 시대이자 새로운 이론을 추구한 시기였다고 한다면, 70년대는 대략적으로 집단적인 표현 방식을 추구해 온 시대이며 퓨젼의 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70년대 재즈의 시작을 어디에서 찾을까는 사람에 따라서 다소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필자의 사견으로는 69년에 녹음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가 70년대 전야의 명연주라 생각되며 이미 70년대 재즈의 캐릭터를 모조리 대비하고 있던 가장 시사적이며 예언적인 중요한 레코딩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비밥을 시사한 <민턴즈 하우스의 찰리 크리스찬>과 쿨 재즈를 시사한 , 모드 재즈의 탄생인 에 필적할 재즈사에 남긴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40년대 말부터 70년대의 전반에 걸쳐서 미일즈 데이비스는 늘 재즈의 예언자로서 재즈계를 이끌어 온 것이다. 69년에는 또다른 한 장의 중요한 앨범이 있다. 그것이 바로 웨인 쇼터의 이다. 이것은 이미 마일즈와의 의견 대립이 극에 달한 웨인 쇼터가 마일즈 데이비스의 의 녹음을 알고 이에 대항하는 형태로 자기 주장을 강하게 부각시킨 앨범이었다.

여기서 잠시 에 참가했던 뮤지션을 열거해 보면 웨인 쇼터, 허비 행콕, clr코리아, 조 자비눌, 존 맥러플린, 데이브 홀랜드, 토니 윌리암스 등이 있다. 이들 뮤지션들이 70년대 재즈에서 뭔가 중요한 열할을 했는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타이틀 곡은 조 자비눌이 작곡한 목가적인 곡으로 이 앨범의 연주에서 와의 원형을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60년대 말 재즈의 록의 리듬과 일렉트릭 사운드 Electric Sound를
도입하였다 이것은 흔히 다가올 70년대 재즈를 시사한 것이라 평가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재즈는 록과 융합하는 새로운 수법을 시도하여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재즈 스타일을 퓨전 재즈 (Fusion Jazz) 라고 한다.

70년대의 첫해인 1970년은 아직까지는 아무래도 전환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어 clr 코리아가 전위 재즈의 흐름을 짐작한 을 시카고의 아방가르드파 앤 소니 브랙스턴과 결성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초로 이 실험적 그룹을 마음에 흡족하게 생각한 clr 코리아도 곧이어 "범위와 감정이 국한되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자기 스스로 반성하며 약1년 정도에서 해산해 버렸다. 또 같은 해 11월은 알버트 아일러가 뉴욕의 이스트 리버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이상한 죽음은 아직까지 미제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clr 코리아도의 해산과 아일러의 사망으로 60년대부터 번창해 온 프리 재즈는 이시에 종말을 맞게 되었다. 그 후에도 '아트 앙상블 오브 시카고'등이 존속했으나 이미 재즈의 대세를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세력은 역부족이었다. 또 아일러의 죽음으로 재즈계는 60년대의 에릭 돌피, 존 콜트레인에 이어서 중요한 임프로 바이져 한사람을 잃어버렸다.

이런 사실로 보아 70년대 재즈는 점차 개인으로부터 집단화로의 경향이 놓아졌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미래를 향한 새로운 태동을 보인 뉴 그룹이 탄생했다. 그들이 바로 'Weather Report'와 'Keith Jarret Qurtet'이다.

키스 쟈렛은 비교적 고립되고 폐쇄적인 세계를 구축하며 내면의 세계를 표출했다고 한다면 웨더 레포트는 72년에 결성한 칙 코리아의 'Return to Forever'와 함께 곧바로 70년대를 리드하는 그룹으로 급성장해가고 있었다. 양쪽 그룹의 리더가 나란히 함께 마일즈 데이비스 패밀리 출신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고 또 이 그룹의 배후에는 마일즈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Weather Report 와 Chick Korea

여하튼 웨더 레포트의 첫 작품 는 재즈 팬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녹음은 71년 2월로 발족 당시의 중심 인물은 조 자비눌, 웨인 쇼터, 이로슬라프 비토우스였다.
그리고 이 첫작품은 이들 세사람의 곡들이 밸런스 감 좋게 연주되고 있으며 공상 과학적이라고 해야 어울릴 일렉트릭 사운드, 대자연과 우주와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룬 상큼한 사운드를 소유하고 있고 지금까지 일렉트릭 혹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기계적이며 인간적인 정감의 표현이 결핌되어 있다는 비난을 일거에 뒤집어 버린 철학과 인간성 넘치는 사운드로 감상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70년대 재즈의 심벌이라고 해야 할 웨더 레포트의 리더가 오스트리아 출신 조 자비눌이라는 점은 이 한 작품으로 미루어 보아 극명하게 드러났다.
71년 녹음한 자비눌의 리드작 <자비눌>은 그의 작품집으로 마일즈 데이비스의 나 도 자비눌의 음악적 컨셉트를 근거로 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 기고한 마일즈 말이 흥미 깊고 더욱 의미 심장하다.


"자비눌은 우리들의 여기에서 몇 년인가 함께 해 온 사고 방식을 지금 발전시켜 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지금 가장 현실적인 음악가들조차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컨셉트이다."라고 마일즈는 격찬하고 있고 두 사람이 공동으로 새로운 사운드를 개발해 온 것을 고백했다. 생각해 보면 마일즈의 뉴 사운드 개발에는 늘 길 에반스와 웨인 쇼터, 조 자비눌과 함께 걸출한 뒤뇌의 협력자가 있었던 것이다.

칙 코리아의 Return to Forever는 Weather Report보다 조금 늦게 결성되었으나 첫 번째 작품은 같은 71년 2월 약 2주간 정도 빨리 녹음되었다. 첫 번째 앨범을 똑같이 그룹 이름과 같은 타이틀을 붙인 것은 한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사운드 면에서도 완전히 Post Free Jazz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상쾌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로 가득차 있었고 칙 코리아가 자성과 반동을 반영해서 상상의 남쪽 바다, 섬의 풍경이랄까 아니면 고도의 낙원에서 들려주는 신비의 사운드라고 해도 좋은 내면의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멤버에는 조 파렐, 스탠리 클락, 아이아토 모레이라, 플로라 프림이 참가했고 백인 흑인 브라질인의 혼성 그룹이란 점도 70년 재즈를 상징하는 그룹으로 무척 잘 어울리는 면면이라고 해도 좋다.

멤버에는 조 파렐, 스탠리 클락, 아이아토 모레이라, 플로라 프림이 참가했고 백인 흑인 브라질인의 혼성 그룹이란 점도 70년 재즈를 상징하는 그룹으로 무척 잘 어울리는 면면이라고 해도 좋다.
clr 코리아는 이름으로 보아 푸에르토 리코 근처에 면한 라틴 계통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되고 조 자비눌은 오스트리아인이며 Return to Forever에 라틴 아메리카 계통과 브라질인이 더불어 있는 것을 볼 때 퓨전이 음악적으로 크로스오버에 머물지 않고 또 인종적으로도 크로스오버해 오고 있는 점이 확실히 밝혀졌다.


팝 음악계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걸쳐서 록과 뉴 소울에 이니셔티브를 빼앗겼지만 전술한 새로운 재즈 그룹의 출현으로 또다시 재즈가 음악적으로도 청중을 의식하고 그들의 사운드적 요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했다는 점으로도 다시 주도권을 쟁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70년대의 재즈를 고찰하는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퀸시 존스와 스티비 원더

70년대 전반의 퓨전 씬에 마일즈와 함께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사람이 바로 퀸시존스이다. 퀸시는 흑인이며 50년대부터 펑키한 필링을 추구해 왔다.70년대에는 또 70년대에 어울리는 펑크를 추구했다.
마일즈가 어떤 계통의 컨셉트를 가진 음악을 추구했던 것에 반하여 퀸시 존스는 뉴 소울을 포함한 음악을 연주하였고 프로듀서 레코드사의 오너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가 종합적인 음악을 지향했던 점으로 미루어 괄목할 만한 대상임에 틀림없다.


69년에 A&M사로 이적해서 첫 번째 작품 로부터 까지의 전체 아홉 작품으로 그가 멤버에 참가시켜 공연한 뮤지션의 수는 무려150명을 넘는 숫자이다. 수적으로만 따지면 마일즈 패밀리를 능가한다. 밥 제임스 데이브 그루신 등 오늘날 퓨젼 재즈계를 리드하는 중진들도 퀸시 존스에게 그들의 재능을 인정받고부터 오늘날 영광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70년대 초에 있어서 흑인 파워의 증대와 흑인 예술의 대두는 월남 전쟁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또 흑인의 지위 향상과 경제적인 수준이 흑인 예술의 번창을 지탱했던 것도 틀림 없는 사실이다. 스티비 원더의 는 전체 흑인들의 바이블이라고 해야할 최고의 작품으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72년경부터 재즈는 또다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크게 부흥하게 되었다. 이 해부터 뉴 포트 재즈 페스티벌이 뉴욕 시내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뉴욕에서 재즈의 르네상스에 박차를 가하게 된 점을 우리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허비 행콕과 메인 스트림의 부흥

74년에는 허비 행콕의 펑크한 작품 가 경이적인 히트를 보여 과거의 재즈 앨범의 히트 기록을 갱신하여 무려 50만장 이상을 판매했다. 허비도 마일즈 패밀리의 한 사람으로 수년간의 자복 생활이랄까 와신 상담 끝에 드디어 자신의 새로운 음악을 확립하며 제 1선으로 도약했던 것이다. 허비는 한마디로 말하면 현실주의자로 기회를 놓치지 않는 예리한 안목을 가졌으며 히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비교적 유행이 끝난 작품이 많아 재즈사적으로도 남긴 명작은 적다. 73년경부터 미국에서는 스윙, 하드밥,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부흥이 눈에 띄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덱스터 고든이 오랜 유럽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오는 등 일시 유럽에서 활동하여 온 하드 밥 계통의 뮤지션 듀크 조던, 재키 맥클린, 아트 파머 등이 속속 뉴욕으로 돌아 와서 하드 밥의 리바이벌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이런 재즈의 르네상스는 얼남 전쟁의 종결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하면서 어그레시브한 전위 재즈가 대두되었으며 월남 전쟁이 일단의 종결이 되면서 메인 스트림 재즈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월남 전쟁이 끝나면서 젊은이들의 표정이 평온해 졌기 때문이다.
    
 

 
클래식과 팝의 교류

영화 안에서의 퓨전이 장르 넘나들기라는 코드를 가지고 있다면 음악에서의 전통적인 퓨전 기조는 클래식과 팝의 교류였다. 클래식을 팝적으로 재해석해 연주한 음반인 『Hooked On Classic』시리즈에서부터 플라치도 도밍고와 존 덴버의『Perhaps Love』를 거쳐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와 샌프란시스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S&M』까지 퓨전음악의 주류는 클래식과 팝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같은 대중음악 장르 안에서도 퓨전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퓨전음악

1988년, 김종진 (Vocal & Guitar)과 전태관(Drums)만으로 결정된 '봄여름가을겨울'란 이름으로, 첫 앨범 '봄.여름.가을.겨울'을 내게 된다.
그들의 첫 앨범은 당시 발라드로 점령된 한국 대중음악계에 충격과 변화를 가져오면서, 침체 되어있던 밴드 음악에 활력이 된다. 무엇보다도 그 즈음에 국내에는 무척이나 생소했던 퓨전 재즈(fusion jazz)를 소개함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획을 긋는다. 첫 앨범에 수록된 10곡중 3곡이 연주곡이었다는 점은 상당한 도전과 모험이었습니다만, 그러한 실험으로 대중음악의 발전을 가져왔다.

서도호의 앨범 자켓 디자인 또한 인상적이었다.


1989년에 발매된 2집 봄.여름.가을.겨울 2의 상업적 성공은 봄여름가을겨울을 확고한 자리에 올려놓는다.

색소폰이 참여한 첫 앨범이고, 이후 그들의 음악이 나갈 방향을 재시한 앨범이다.
1991년에 나온 라이브 앨범 봄여름가을겨울 Live는 국내 최초의 본격 라이브 앨범으로, 당시 두장짜리LP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그 뒤 라이브 앨범 부움에 촉매가 된다.

신곡으로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와 '가을이야'가 실려있다.
이 시기의 연주곡들은 어느 일본 퓨젼 재즈 밴드들의 소리와 비슷하다는 평도 있었다.

또 엽기적이다 할 '노바소닉' 이라는 그룹을 보면 정말 이질적인 두 음악장르를 만날 수 있다.
김영석, 이수용, 김세황 국내 록 음악의 자존 심을 지켜왔던 세 사람이 국내 랩의 선두주 자 인 김진표와 만났다.

그리고 그들만의 새로운 록(Rock) 을 선보인다.

넥스트(N·E·X·T) 해체후 각자 휴식의 시간을 가진 후 개인적 음악과 공동 작업을 틈틈이 해오 던 중 김세황이 패닉 라이브 참여를 계기로 처음 한무대에 같이 선 김진표의 베이스 톤은 의외로 세 멤버에게서 찾던 소리였고 그들의 연주와도 너무나 일치했다.
김진표의 무대 매너와 목소리에 반한 세 명은 공감대를 확인하고 새 앨범제작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많은 팬들의 기다림과 기대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며, 그 기다림과 기대는 이들의 음악이 대중보단 매니아 쪽으로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인 ROCK의 부흥은 이들의 앨범을 들으면 결코 막연치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음악은 그들이 듣고 잘라온 60 ~90년대의 락의 집약 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변하고 음악이 변했지만, ROCK의 정신만은 변하지 않았고, 이들에 의해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만남은 그들만의 음악으로 확실한 자리 매김을 이루었다. 그들이 바로 '노바소닉' 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패닉 출신 김진표에게서 풍기는 랩의 리듬과 실험적인 록그룹 넥스트(N·E·X·T) 의 멤버들에게서 느껴지는 록(Rock)의 정신이다.
 
또 박상민은 트로트의 멜로디와 정서에 록의 강렬함을 융합해 일명 '록뽕 -록 앤 뽕짝' 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재즈와 국악의 접목, 국악과 대중가요의 접목등이 많이 시도되고 있다.

    
 

 
일본의 퓨전음악


일본의 대표적인 퓨전그룹은 티스퀘어와 카시오페아이다.
 
T-Square (티스퀘어) 멤버구성

1978년의 데뷔 이후, 명실 공히 Instrumental 뮤직의 No.1 그룹으로써 활약하는 밴드. 일본 골든 디스크 대상 - Jazz Fusion 부문 " The Best of The Year " 상을 총 11 회 중 9 회를 1987년부터 1995 년 까지 연속 수상.


그 활약은 일본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1988년 [ TRUTH ] , 1990년 [NATURAL] 을 미국에 발매하는 동시에 전미 투어를 감행하였으며 1992년에는, 전 세계 20여개국으로 앨범 [MEGALITH] 를 발매하는 등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23rd Released Album 인 [GRAVITY] 로 골든 디스크를 다시 한 번 수상하여 10 번 수상의 기록을 만들었으며, 현재도 언제나 Adventure 정신으로 끊임없이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티스퀘어는 리더히 마사히로가 1978년 대학중에 서클 동료와 만든 The square가 모체 가되어 지금 까지 끊임 없는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발표한 앨범도 거의 30장이 다되가고 있고 지금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멤버는 리더이며 기타를 맡고 있는 Masahiro Andoh, 베이스를 맡고 있는 Mitsuru Sutoh, 드럼을 맡고 있는 Hiroyuki Noritake, 그리고 티스퀘어에 키보드를 맡고 있는Keiji Matsumoto 마지막으로 색소폰연주를 맡고 있는Takahiro Miyazaki 로 구성 되어 있다.


그들은 각자 인정 받는 연주가들로서 자신의 솔로 앨범 발표등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티스퀘어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대표적인 퓨전재즈의 밴드이다.

  
 

  
Casiopea (카시오페아) 멤버구성

1976에 결성된 일본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퓨전재즈 밴드라 말할수 있는 <카시오페아>가 결성됬다. 'Thrill·Speed·Technique'이란 주제의 첫 앨범이 발매된 것은 1979년의 일이었는데 그 첫 레코딩때부터 고도의 테크닉으로 고난이도의 곡을 구사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첫 앨범 이후 잇따라 놀라울 정도의 완성도 높은 앨범들을 발표하며 해외에서의 라이브 공연, 레코딩을 병행하여 국제적인 밴드로서의 면모를 일신하며 성장을 거듭하기에 이른다.
특히 기타리스트인 '이세이 노로'는 데뷔앨범 이후 전곡을 작곡하는 재능을 발휘하여 밴드의 성공을 이끌어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할수 있다.


이세이 노로 이외의 멤버들의 재능 또한 대단하였는데 특히 1980년에 천재드러머라 칭해지던 '아키라 짐보'가 영입된 이후로는 라이브에 있어서 가히 최고의 연주력을 보여주고 있다.
1989년 '아키라 짐보'와 베이시스트의 탈퇴로 인해 밴드가 잠시 전력손실의 궁지에 몰리기도 하였으나 89년 대규모의 월드투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밴드는 다시 그 절정기에 이르게 되었다.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새로운 멤버를 영입한 카시오페아는 이후에도 여전히 뛰어난 앨범들을 연달아 발표하며 나날이 원숙미를 더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멤버는 데뷔당시의 기타리스트 겸 리더 '이세이 노로'와 키보디스트 '미노루 무카이야' 그리고 1990년에 참가한 베이시스트 '요시히로 나루세' 이렇게 3명이다. 고정멤버로서의 드러머는 없는 상태지만 최근작 앨범인 'Light and Shadow' 에 다시 참가한 '아키라 짐보'가 이후 계속되는 투어에 객원멤버로 참여해주고 있다.
카시오페아의 매력을 한마디로 말할수는 없지만 뛰어난 멜로디라인과 '이세이 노로'의 작곡능력이 빼놓을수 없는 중요한 인기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기타중심의 밴드로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며 멤버 전원이 하나가 되어 곡을 만들어 나가는점 또한 핵심적인 요소라 말할수 있겠다.


게다가 결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의 음악을 지켜 나가는 신념이 돋보이며 각 멤버들이 보여주는 따라하기 어려운 고도의 연주 테크닉 또한 간과할수 없는 요소이다.
'이세이 노로'의 듣기 편안한 기타솔로와 신선한 음악적 발상은 이들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할것이다.최근 카시오페아에 대해 그 원숙미가 어느정도 높은 수준에 오른 반면 매너리즘에 빠져 이전의 음악적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기우에찬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발표한 최근 앨범들을 들어보면 각각의 독특한 개성이 여전히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고 라이브에서 조차 그들의 나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의 역동적인 모습이 살아있음을 확인할수 있다.


퓨전이라는 것은 60년대 후반(제가알기로는 1967년)마일즈 데이비스라는 아티스트가 재즈구성에 록의 격렬한 비트를 집어넣으면서부터입니다.
좀더 자세히 쓰자면 1967년 재즈음악계에서는 하드밥과 아방가르드 재즈에대해서 지루함을 느끼는 아티스트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에 이런 음악적인계혁(?)에 시발점이된 뮤지션이 마일즈 데이비스 였던것이다.
70년대 이에 다른 아티스트들도 재즈와 락의 만남이라는 퓨전재즈라는 장르가 생겨나게된다.

이시기에 나타난 밴드나 그룹은 Return To Forever, Weather Report, the Mahavishnu Orchestra, Miles Davis' various bands정도이고 이들이 퓨전의 시발점이돼는 선상에 서게된다.
그런데 80년대에 들어와서 돈이 개입돼면서 재즈와 팝,재즈와 R&B 이런식으로 많이음악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런음악이 퓨전이라는 계념을 오염시키자 smooth jazz라는 장르가 생기게된다.
암튼 퓨전의 정의는 재즈의 곡구성을 바탕으로 격렬한 락비트의 조합이다.. 대표적인 그룹이나 뮤지션은

George Benson, Stanley Clarke, Chick Corea, Miles Davis, Herbie Hancock, Bob James, Mahavishnu Orchestra, Chuck Mangione, Herbie Mann, John McLaughlin, Jaco Pastorius, Return to Forever, The Rippingtons, David Sanborn, John Scofield, Steely Dan, Grover Washington, Jr, Weather Report, Tony Williams, The Yellowjackets, Frank Zappa, Pat Metheny.

유명한사람들로만 정리했습니다.
대표적인 곡은 너무 많습니다..위의 아티스트 들을 검색하셔서 나오는 곡 정도면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퓨전밴드는 퓨전음악을 하는 밴드를 지칭합니다..
중요한 앨범 몇가지 적어봅니다.

Bob James - Touchdown
Stanley Clarke - School Days
Miles Davis - In a Silent Way
Steely Dan - Aja
Frank Zappa - Hot Rats
Miles Davis - Tribute to Jack Johnson
Herbie Mann - At the Village Gate
Pat Metheny Group - Pat Metheny Group
Jaco Pastorius - Jaco Pastorius